대한민국, Republic of Korea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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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Republic of Korea의 시작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0.04.1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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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임실호국원 신채운

 

지금의 우리나라의 국문명인 ‘대한민국’, 영문명인 ‘Republic of Korea’는 101년 전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 시작됐다.
독립 더 나아가 한반도 역사상 최초의 국민이 주인인 새로운 자주 국가를 꿈꾸는 임시정부의 소망이 그대로 담긴 이름이다.
‘대한민국임시헌장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일제에 탄압 속에서 한민족의 염원을 담아 수립한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민주권국가인 임시정부가 101년 전 꿈꾸었던 소망이 현재 우리 대한민국으로 계승되고 있다.
해외동포들로부터 시작된 대동단결선언, 대한독립선언, 2·8독립선언을 거쳐 국내에서 전국적으로 일어난 3·1운동은 일제의 식민통치에 범민족적 대한 항거였고, 이는 국내외에 7개의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계기가 됐다.
1919년 4월 11일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각도 대의원 30명이 모여서 임시헌장 10개조를 채택했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됐다.
임시헌법을 제정·공포하고 이승만을 임시대통령으로 선출하는 한편 내각을 개편하고 이어 9월 6일에는 러시아에 조직된 임시정부와 통합하고 제1차 개헌을 거쳐 대통령 중심제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다.
임시정부는 대한독립을 위해 외교·군사 등의 방법을 총 동원해 노력했다. 초기에는 대미외교를, 종전기는 대중외교를 펼쳤다.
1919년 4월 18일 파리평화회의에 김규식을 파견, 7월에는 만국사회당대회에 조소앙을 파견해 한국독립 승인결의안을 통과시켰다.
1943년 카이로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정식으로 승인을 받아 1944년 프랑스·폴란드·소련 정부에 주중대사관을 통해 임시정부의 승인을 통고하고, 1945년 포츠담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을 확인하는 외교활동을 전개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김구가 이끄는 한인애국단을 중심으로 의열투쟁과 독립군단체지원·광복군창설 등의 항일독립전쟁을 전개했다.
1919년 상하이를 시작해 1940년 충칭까지 중국 각지를 옮겨 다니는 수난을 겪으면서도 1920년 상하이에 육군무관학교·비행사양성소·간호학교를 건립해 군사를 양성했다.
또 1940~1945년 충칭시기에는 중국과 새로운 군사협정을 체결하고 독자적인 군사 행동권을 얻어 1945년 국내진입작전의 일환으로 국내정진군 총 지휘부를 설립했다.
미군 OSS부대와 합동작전으로 국내 진입계획을 수립하는 중 일제의 항복으로 해방을 맞게 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비록 임시정부라는 형태를 취하긴 했지만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수립된 민주공화정 정부였으며 세계 식민지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에 걸쳐 저항하고 존속한 임시정부이다.
조국을 되찾기 위한 26여 년간의 대장정의 결실은 현재 대한민국의 뿌리가 됐다.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독립, 더 나아가 국민을 위한 새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한 임시정부의 노력은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에 그대로 녹아있다. 우리는 그 노력과 공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번 4월 11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101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 임시정부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우리 선조들의 애국정신과 많은 독립선열들의 애민정신으로 이룩된 자랑스러운 나라임을 기억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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