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탄스러운 돈 주고 상 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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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탄스러운 돈 주고 상 받기
  • 장세진
  • 승인 2019.12.1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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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서울신문이 11월 4일부터 3주 연속 보도한 기획 기사 ‘상을 팔고 스펙을 삽니다’ 시리즈는 충격과 함께 상에 대한 깊은 불신을 안겨준다. 시리즈 기사는 (1)혈세로 상을 사는 지자체, (2)돈과 바꾼 신뢰, (3)돈으로 사면 안 되는 것들이란 제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리즈는 2개 면 전체에 걸쳐 있는 등 방대한 분량이다. 그만큼 할 말이 많다는 얘기다.
먼저 “신문사가 주최한 시상식이 ‘돈 주고 상 받기’ 병폐의 온상인 건 언론의 부끄러운 민낯”임을 밝히며 시리즈 기사를 내보낸 서울신문의 용기에 박수부터 보낸다. 시리즈 기사 (1)의 요지는 지자체들이 각종 수상 대가(代價)로 시상 단체에 돈을 준다는 사실이다. 물론 지자체장 사비(私費)가 아니라 자치단체 예산이다. 대개는 광고비ㆍ홍보비 명목이다.

그런데 돈 받고 상을 주는 시상 단체는 주로 서울 소재 언론(신문)사다. 서울신문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각 지자체에 정보공개 청구를 한 결과 국내 주요 언론사가 해마다 10~30개의 시상식을 주최하며 지자체에 상을 주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언론사는 시상식 장소로 서울 고급 호텔을 빌리고, 가수를 초청해 축하공연을 벌이기도 한다.
그 기사를 좀 자세히 살펴보면 “2014년 이후 지자체가 돈 주고 상 받기로 쓴 예산은 정보공개 청구로 확인된 것만 49억 3,700만 원이다. 이 중 84.7%인 41억 8,000만 원이 언론사가 주최한 시상식으로 흘러들어 갔다. 특히 종합일간지 3곳과 경제지 2곳 등 5개 사가 주최한 시상식에 40억 5,700만 원이 집중됐다.”(서울신문, 2019.11.4.)는 내용이다.
서울신문은 익명을 요구한 지자체 관계자가 털어놓은 말도 전하고 있다. “언론사가 자체적으로 수상자를 선정하고서 광고비를 내야 수상 자격이 있다고 통보한다”며 “언론사와의 관계 유지를 외면할 수 없는 데다 상을 받았다는 광고가 실리면 지역 홍보에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어 예산을 집행했다”가 그것이다.
시리즈 기사 (2)에선 국회의원들도 단골 수상자로 드러나는데, ‘얼굴 마담’ 같은 역할이라는게 충격적이다. 요컨대 다른 일반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국회의원을 수상자로 내세운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등 유명인이 아닌 일반인이 상을 타려면 대부분 소정의 참가비나 광고비 등을 내야 한다. 예컨대 OOOOO어워드는 심사ㆍ상장제작ㆍ시상행사 운영 등의 비용을 지원자들에게 대놓고 요구”한다.
시리즈 (3)에선 상이 봉사 의미인 스웨덴의 경우를 소개한 메인 기사보다 눈에 띄는 게 있다. 대기업, 심지어 중소기업들까지 언론사의 돈 주고 상받기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중소기업 52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57.7%가 “응모하지도 않은 상을 주겠다는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더욱이 73.3%가 그런 연락을 받은 적이 여러 번이라니 할 말을 잃는다.
이쯤 되면 받는 상이 아니다. 사는 상이다. 돈벌이 도구로 전락해버린 상이다. 돈 주고 받은 상에 대한 충격은 가시면 그만이지만, 상에 대한 불신이 쉽게 해소될지는 미지수다. 단적인 예로 어디 지자체가, 어느 국회의원이 무슨 상을 받았다고 하면 박수를 치며 상찬하긴커녕 자동적으로 ‘저거 얼마 주고 받은거야?’라는 의문부터 생기지 않겠는가!
특히 어느 종합일간지와 계열사가 2014년부터 시상식을 주최해 118개 지자체가 263차례에 걸쳐 상을 탔다는 ○○브랜드대상ㆍ소비자 ○○○○브랜드대상ㆍ한국을 ○○○○경영대상ㆍ○○○○경제리더대상ㆍ대한민국CEO ○○○대상 등의 상을 앞으로 수상한다면 ‘돈 주고 산 상’이라는 일종의 주홍글씨가 따라 붙지 않을까 싶다.
또한 직원 7명을 두고 교육사업을 하는 시민이 “요즘 같은 연말엔 정확히 이틀에 한 번꼴로 전화를 받는다. ‘브랜드대상’, ‘경영대상’, ‘인물대상’, ‘글로벌대상’ 등 각종 시상식 수상자로 선정됐는데 상을 받겠느냐는 내용”(서울신문, 2019.11.18.)이라고 말한 그 이름이 들어간 상들도 돈 주고 산 것이란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듯하다.
그러고보면, 아직도 등단 운운하며 금품을 요구하는 같잖은 잡지들이 있는 모양이지만 문학상의 경우는 양호한 편으로 보인다. 여러 지자체가 상금 없이 달랑 상패만 수여하는 무늬뿐인 상마저 돈 주고 사는 것은 아니기에 그보다 낫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깜 안 되는 사람이 받을지언정 돈 주고 사는 것은 아닌 무릇 문학상도 그보다 양반인 셈인가?
바야흐로 수(시)상의 계절이다. 시상식 초대장이 우편으로 오는 경우 참석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나는 부러 불참하기도 한다. 상 받을만한 사람이 아닌데, 수상자인 경우 악수하는 등 억지춘향이 노릇을 해야 해서다. 영화배우나 탤런트는 물론 정치인이거나 사업가도 아닌 일개 문인이 그런 억지 놀음을 해가며 살아갈 이유가 없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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