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포에서 익산의 근대문화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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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포에서 익산의 근대문화를 보다
  • 문공주 기자
  • 승인 2016.08.09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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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산의 곳곳에서 고대(古代)와 근대(近代)의 문화를 많이 느낄 수 있다.

 익산의 금마면과 왕궁면이 고대문화의 중심지라면 춘포면은 근대문화를 상징한다 할 수 있다. 혹자는 근대를 상징하는 춘포의 문화는 철도와 대농장으로부터 파생되었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인 춘포역,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호소카와 농장 가옥 등이 그 예다.

○ 깊은 역사(歷史) 지닌 단 하나의 역사(歷史), 춘포역

 1914년 일제강점기에 개통된 춘포역은 지역에서 생산된 쌀을 수탈해 일본에 실어 나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춘포역의 처음 이름은 ‘대장역’이였다. ‘대장역’이라는 이름은 그 일대 지역의 가장 큰 일본인 농장 이름이 ‘대장농장’이라 그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1996년에 지금의 춘포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춘포역의 역사적 가치는 높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된 역사(驛舍)이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2005년 11월에 등록문화재 제210호로 지정되었다. 가슴아픈 역사(歷史)를 꽤 많은 시간동안 간직한 가장 오래된 역사(歷史)이다.

 이후 춘포역은 정부의 전라선 복선전철화사업으로 안타깝게 2011년 5월 폐역되었다. 지상으로 철로가 신설되면서 그 자리엔 감나무와 자두나무, 해바라기 등이 역사를 전하고 있다.

 춘포역이 지니는 역사(歷史)는 현재까지 존재하는, 그리고 보호해야 하는 문화재로의 역사(歷史)이다.

○ 또 하나의 등록문화재, 호소카와 농장 가옥

 춘포에는 간이역인 춘포역과 함께 가슴 아픈 역사를 가진 곳이 한 곳 더 있다.

 바로 호소카와 농장 가옥이다.

 일제강점기시절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큰 농장이 있었던 이 곳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작농으로 살아가던 곳이다.

 만경강을 수원삼아 지금도 꽤 넓은 논농업은 이뤄지고 있다. 과거 눈물겹게 힘든 시절을 보내 온 우리나라 사람들의 아픔이 지금도 묻어있어 보인다.

 춘포면 만경강 제방 인근에 팔작지붕에 일식 기와로 지어진 2층짜리 건물이 눈에 띈다. 호소카와 농장의 농업기술자였던 에토가 건축해서 살았던 집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내부는 편의성 때문에 일부가 개조되었지만 외형은 아직까지 일본식 건축 유형을 볼 수 있어 지난 2005년 등록문화재 제211호로 지정되었다.
○ 근대 100년의 산증인, 만경강

 만경강은 운장산의 고산천과 만덕산에서 발원하는 소양천이 합류하고 다시 전주천이 만나 이뤄진 강이다.

 대장촌과 불이농촌 등 일제강점기의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만경강은 근대 100년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현재 만경강의 제방은 일제강점기 때 농지 확보를 위해 강 안쪽에 쌓았는데 그로 인해 곡류이던 강이 직류로 바뀌게 되었다. 

 본래 사수(泗水)이던 이름도 만경강으로 부르게 되었다.

 제방 쌓기 전에는 굽이 돌며 흐르던 강물이 모래밭을 만들어 모래찜질도 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지금은 만경강에서 백구방향으로 연결하는 다리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새로운 다리가 개통이 되면 춘포의 역사를 보기 위해 더 많은 이들이 찾을 것이다. 춘포의 근대문화는 우리들의 아픈 역사이고 감추고 싶은 역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를 교훈 삼아 이젠 억울하고 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 이 자산을 소중히 관리하고 교육 자료로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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