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배 주필
‘탓’은 어떤 ‘핑계’를 뜻하기도 하고 또는 자기 할 일이나 맡은 책임을 타그 책임을 그러나현 ‘탓’이 허용안되는 사회다. 이는 곧 현대 사회구조가 분업사회이개인기능개인능력도 분업화된 구조속에서만 측정 및 평가가 가능하다는 말과 유관하다.
이렇게 책임이 개인에게 있고 또 한 개인이 크고 작고 간에 그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하는 현대사회에서는 누구의 ‘탓’이나 ‘핑계’로 자기의 잘못이나 책임을 전가시킬 수가 없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국민들 사이에는 걸핏하면 남에게 자기의 잘못을 전가시키고 자기는 뒤로 빠지려는 풍조가 많았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선비가 아니더라도 탓이나 핑계나 책임 전가가 허용되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이와 함께 우리들도 정확한 한계성 안에서 자기 일에 대하여는 자기가 책임을 지며 직장에서도 역시 자기일은 자기 스스로 해내야 하는 사회기풍을 창조할 의무를 갖게 됐다.
그래도 아직 우리 사회와 직장에는 윗사람은 아랫사람의 잘못을 탓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잘못을 탓하는 일이 비일 비재 하다. (저 K과장이 이번에 회사를 그만 뒀대 K과장의 잘못이 아니고 밑에 있는 J계장의 잘못으로 그만 뒀다는데?)
흔히 듣게 되는 이런 식의 대화 속에 우리는 현대인의 ‘탓’에 대한 뿌리가 얼마나 깊은 가를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요즘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의 각분야도 마찬가지다.
첫째로 자기가 자기 스스로의 책임 한계성을 직장에서도 늘 생각하여 잠시도 이런 생각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둘때로는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한 책임 한계성을 분명하게 구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맡은 일에 책임 한계가 불분명할 때 남에게 전가하는 ‘탓’이 생긴 다고 본다.
셋째로는 남의 일이나 맡은 책임을 가로 채어 자기 일처럼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남의 일을 자기 일 같이 생각하는 동정심은 좋으나 이 한계성을 넘어서서 나중에 일이 잘못 되었을 때는 서로가 책임전가의 ‘탓’으로 변용되어 버린 일이 비일 비재 하다.
넷째로는 자기의 직장에서나 자기의 생활에서 자기의 가정에 오직 자기 개인의 존재의식을 남에게 강하게 보일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의 존재의식이 강하게 작용할 때 남의 일이나 책임도 둘러 씨우기 쉽기 때문이다.
요즘 일부 정치하는 사람들의 낮뜨거운 행태을 볼때 자신이 저지른 죄를 솔직 하지 못한채남의 탓이나 이핑계 저핑계를 밥먹듯이 하면서 국민의 눈을 속여가며 정치적으로 해결 하려는 부도덕하고 비열한 행동에 대해 국민들이 바라보는 시선은 분통과 더욱 불신만 조장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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