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성지와 역사 유적을 품은 ‘아름다운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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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성지와 역사 유적을 품은 ‘아름다운 순례길’
  • 문공주 기자
  • 승인 2012.09.13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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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기 위해선 걷기가 좋고, 비우고 버리기엔 가을이 좋다. 시간이 주는 묘한 느낌을 알기엔 미륵사지가 좋고, 사람들 사는 향내를 맡고 싶으면 여산이 좋다. 위로받고 싶을 때는 나바위성당이 좋고,내 안의 나를 만나고 싶다면 익산 ‘아름다운 순례길’이 좋다.

한국순례문화연구원과 4대 종단은 2009년 전북 종교 성지와 역사유적을 묶은 ‘아름다운 순례길’을 조성했다. 그리고 오는 11월 1일부터 11일까지 ‘2012 세계순례대회’를 앞두고 있다. 4대 종단 종교지도자를 초청해 열리는 이번 순례 대회에는 세계 각지에서 5만 여명이 참여해 아름다운 순례길을 함께 걸으며 전북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될 예정이다.
종교 간의 분열과 갈등을 뛰어넘어 대화와 소통을 위해 만든 ‘아름다운 순례길’은 전주 한옥마을에서 시작해 송광사, 천호성지, 나바위, 미륵사지, 초남이, 금산사, 수류, 모악산을 잇는 240km 총 9개 코스로 구성돼 있다.

특히, 4대 성지로 유명한 익산의 3코스(천호~나바위, 26.5㎞)와 4코스(나바위~미륵사지, 27.5㎞)는 역사와 종교, 자연을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는 길이다.

산, 들, 천변, 기찻길까지, 느리게 걸으며 풍요로운 시골 풍경을 담을 수 있고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을 만큼 평탄하다. 코스의 시작과 끝인 천호 토마스 쉼터, 나바위 피정의 집, 미륵산자연학교에서는 숙박도 가능하다.
3코스 첫 지점은 천주교 순례지인 천호성지로, 여기서 도보나 자전거로 문드러미재를 넘으면 현대 시조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긴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가 나온다. 배롱나무와 모정, 사랑채, 그리고 담장 뒤쪽으로 200여년이나 된 탱자나무가 버티고 있어 선생의 어린시절 자취를 느낄 수 있다.
달팽이 이정표를 따라 걸으면 여산향교와 원불교 여산교당, 여산동헌에 차례로 닿게 된다. 여산동헌은 단종의 왕비였던 여산송씨 정순왕후의 기구한 사연과 천주교 백지사 순교자들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이다.
여산 곳곳은 천주교 순교지이자 성지여서 2km 안팎에 숲정이 성지, 백지사터, 여산성당이 두루 자리하고 있다. 여산면에 천주교가 전래된 것은 박해를 피해 이주해온 타 지역의 신자들이 살면서부터이다. 경기도와 천주교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금산, 고산, 여산으로 숨어들었다가 1866년 병인박해와 1868년 무진박해 때 처형당했다고 전해진다.

논길과 천변을 따라 두여교, 수은교를 걷다보면 무형교회, 망성농협을 거쳐 나바위 성지에 이르게 된다.

3코스 마지막 지점인 망성 나바위성당은 1845년 한국인 첫 사제 김대선 신부가 첫발을 내디딘 곳으로 1987년 초대주임이었던 베르모넬 신부가 동학농민운동 때 망해버린 김여산의 집을 1,000냥에 사들여 개조해 완공한 곳이다. 한옥 목조건물에 기와를 얹어 한국적인 미를 물씬 느낄 수 있다.
나바위성당을 지나 4코스로 들어서면 기찻길과 갈대밭길에 이어 금강지류 합류점에 이르게 된다. 강둑을 따라 걷는 길이기에 햇볕과 바람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만큼 자연을 오롯이 만끽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갈대와 억새, 물소리와 발소리, 모든 자연이 몸  속으로 흘러들어 마음의 평화를 도와준다.
새다리와 구평교, 중리교, 성남교를 따라 걸으면 원불교 재가 출교 교도를 위한 전문 훈련기관인 원불교 중앙중도 훈련원이 나온다. 미륵산 줄기를 따라서는 소림사와 사적 제 150호인 익산 미륵사지를 만날 수 있다. 백제시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사찰이었던 미륵사지는 신라의 침략을 불교의 힘으로 막고자 지은 호국사찰이다.
미륵사지 바로 옆에 위치한 미륵사지유물전시관에서는 사리장엄, 금동향로 등 발굴유물이 전시돼 있어 백제에서 통일신라,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미륵사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이곳부터는 왕궁리오층석탑과 익산 춘포를 거쳐 완주 초남이에 이르는 제5코스가 펼쳐진다.

‘아름다운 순례길’은 어느 하나의 종교로서만이 아니라 여러 종교와 문화가 새로운 정신으로 나아가자고 하는 평화의 발걸음이다. 또, 까마득한 먼 옛날 우리들에게 ‘참’을 알려주고자 뜻을 높였던 성자들의 혼과 자취를 느끼며 스스로 맑은 영혼을 지닌 성자가 되어 보는 특별한 여행이다.

올 가을 길 위에서 홀로 묵상하고 역사와 대화하다 보면 여행 끝엔 기대하지 못했던 ‘답’이 번뜩일지도 모른다.

/익산=문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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