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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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항아리
  • 엄범희 기자
  • 승인 2011.08.31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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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자식 또는 손자에게 수십억짜리 재산을 탈법 편법으로 미리 상속해 준 사람들이 한동안 화제거리가 되었다.

그들의 탐욕과 빗나간 가족 이기주의를 개탄하면서 <청구야담>이라는 조선후기 야담집에 실린 한 중인 신분층 부인의 일화를 되새겨 본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한 여인이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어린 아들 둘과 함께 가난하게 살았다.
어느날 집 뒤뜰에 채소라도 심어 생계에 보태려고 밭을 일구러 나갔다. 한참 호미질을 하는데 ‘쨍그랑’ 하는 소리가 나서 살펴보니 큼직한 단지가 있고 그 안에 은화가 가득하였다.

부인은 얼른 흙을 모아 단지를 다시 덮어 버렸다. 그리고는 집안식구가 아무도 모르게 했다.
부인은 가난한 살림 속에서도 부지런히 일하고 두 아이들을 정성으로 가르쳤다.

그리하여 두 아들은 재능있고 건실한 젊은이로 성장했다. 형은 선혜청의 관리가 되고 아우는 호조의 하급관리가 되었다.

살림이 자리잡히고 손자들까지 모두 장성한 어느날 노부인은 자손들을 모두 불러 뒤뜰을 파고, 은전이 가득 든 항아리를 열어보게 했다. 이어서 말했다.

"내가 30년 전에 땅을 파다가 보니 이 항아리에 은전이 가득하지 않겠니. 그때는 생계가 무척 어려웠더니라. 저걸 내다가 팔면 당장 큰 부자가 되었겠지. 하지만 너희들을 생각해보니, 아직 어린것들이라. 지각이 들지 않고 어린 때에 부유한 것에 익숙하고 세상의 어려움을 모르면서 어찌 즐겨 공부하려 하겠느냐. 주색과 유흥에 빠지는 게 뻔한 일이지. 그래서 이 항아리를 곧 덮어버리고 너희들로 하여금 춥고 배고픈 고통과 재물의 아까움을 느끼며 글 공부와 생업에 부지런하도록 했던 것이다."

권력과 명성이 드높아서 "지도층"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이 부인의 반에 반만큼도 지각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한심하다. 그들은 혹시 지난 30년간 집 뒤 뜰의 단지 속에 자기 양심을 꼭꼭 묻어 두었던 것은 아닐까.

/달리는 희망제조기 송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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