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날리는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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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날리는 태극기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4.02.2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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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서부보훈지청 신여은 주무관

 

3.1절에 태극기를 직접 달아본 적이 있는가? 1919년에 일어났던 만세운동의 역사를 생생히 알고 있는가? 작년 3월 1일, 아파트 창문에 드문드문 달린 태극기를 보며 언제부턴가 3.1절이 설레는 공휴일로만 인식되어 온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날의 피와 노고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따스한 봄을 맞이할 수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에 조선이 강제로 합병당한 후, 조선은 무단통치에 시달리고 있었다. 토지정리사업은 농민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돌아갔으며, 일본에서 큰 흉년이 들자 이를 수습하기 위해 조선에서 쌀을 더욱 공출하면서 자연히 농민들의 불만은 높아졌다. 여기에 고종황제가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지면서 반일 분위기가 걷잡을 수 없게 커졌다.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을 선언하노라!” 손병희, 권동진 등 민족대표 33인은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조선의 독립을 선언했다. 같은 시각, 탑골 공원 거리에는 미리 준비해 둔 독립선언서와 태극기가 뿌려졌고 나이와 신분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이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외쳤다. 3.1운동은 서울에서 시작하여 만주, 연해주, 미국 등 해외 각지에도 퍼져나갔다. 또한, 중국의 5.4운동 등 다른 나라의 민족운동에도 영향을 줬을 만큼 독립의 염원을 담은 만세운동의 열기가 뜨거웠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일본은 만세운동을 무차별적으로 진압했다. 경기도 화성군 제암리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일본군은 성인 남성들을 교회에 모아 가두고 마을에 불을 질렀다. 심지어 조선인은 태극기를 소지했다는 이유만으로 구타당했다. 이렇게 만세운동이 거듭될수록 수많은 사람이 다치고 옥고를 치르면서, 같은 해 5월 중순 이후로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에도 일본은 여전히 역사 교과서 왜곡, 위안부 문제 등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독립을 위해 싸운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분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1919년 3월 1일, 수많이 휘날렸던 태극기를 직접 달아보며 그분들의 단단한 결의를 다시 느껴보는 건 어떨까? 올해는 태극기 물결이 치는 장면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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