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예고한 대로 구랍 27일 탈당했다. 이 전 대표는 이날 세 차례나 국회의원 선거 패배를 맛본 서울 노원구의 한 식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변화가 없는 정치판을 바라보며 기다릴 수 없었다”며 “오늘 국민의힘을 탈당한다. 동시에 국민의힘에 제가 가지고 있던 모든 정치적 자산을 포기한다”고 밝혔다.
2011년 12월 27일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에 합류해 정계 입문했고, 2021년 6월 11일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43.8%의 득표율로 당 대표에 당선된 지 약 2년 6개월 만이다. ‘36세 제1야당 대표’(장세진 에세이 ‘뭐 저런 검찰총장이 다 있나’ 수록) 처음 발표(전북연합신문, 2021.6.17.)도 그 무렵이니 나 역시 약 2년 6개월 만에 다시 하는 이준석 이야기다.
사실 36세 제1야당 대표는 깜짝 놀랄 일이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탄핵 이후 자주 바뀐 당명이 보여주듯 지리멸렬을 거듭해온 보수정당의 젊은 피 수혈을 통한 새로운 리더십을 예고한 것이어서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광주에 가서 무릎 꿇고 사과하는 등 환골탈태하려는 국민의힘 변화의 몸짓이 정점에 이른 듯해서다.
이 대표가 수락 연설에서 “변화를 통해 우리는 바뀌어서 승리할 것”이라며 “관성과 고정관념을 깨달라. 그러면 세상은 바뀔 것”이라고 당부한 그대로 국민의힘은 정권교체를 이뤘다. 누가 뭐래도 대선 승리의 1등 공신이지만,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보낸 “내부총질이나 하는 당 대표”란 문자가 공개되면서 이 전 대표는 징계를 통한 ‘토사구팽’ 당하기에 이르렀다.
새 정부 출범 두 달 만에 여당대표가 징계를 받고 법정공방까지 벌인, 정당사에 없던 수모를 겪은 이 전 대표로선 많이 인내하며 자신이 일궜던 국민의힘 개혁을 기다리다 마침내 결행한 탈당이라 할 수 있다. “전날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여당 사령탑으로 등판해 관심이 반감된 와중에 최종 선택에 내몰린 측면이 없지 않다”(한국일보, 2023.12.28.)는 주장이 있지만, 그렇지 않다. 12월 27일 탈당 날짜가 오래전부터 예고된 바 있기도 해서다.
이어 “3년 전의 저라면 와신상담(臥薪嘗膽)·과하지욕(跨下之辱) 등의 고사성어를 되뇌며 ‘당을 위해 헌신’과 같은 ‘여의도 방언’을 입 밖으로 내었을 것”이라며 “때로는 영달을 누리고 때로는 고생을 겪으며 만수산 드렁칡과 같이 얽혀 살 수도 있었다”고도 했다. 타협하거나 굴복해 편한 길을 가지 않은 심경도 읽힌다.
이 전 대표는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2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왜 적장을 쓰러뜨리기 위한 극한 대립, 칼잡이의 아집이 우리 모두의 언어가 되어야 하느냐”고도 했다. 이와 관련해 이 전 대표는 이날 ‘JTBC 뉴스룸’ 인터뷰에서 “제가 ‘칼잡이 아집’이라고 표현한 부분은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 가깝다”고 설명까지 곁들였다.
그는 “선출되지 않은 누군가가 유·무형의 권력을 휘두르며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모습, 그 사람 앞에서 법과 상식마저 무력화되는 모습이 반복되는 것은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트라우마”라며 누가 봐도 김건희 여사를 겨냥한 발언도 내놨다.
한 위원장을 “경쟁자”라고 표현한 이 전 대표는 “12년 정치하면서, 매년 ‘이준석 대항마’ 타이틀로 등장하는 분들이 ‘이준석 부정’으로 행보를 시작했을 때 어려움을 겪는 걸 봤다”며 “(한 위원장이) 굳이 (청년 세대와 국민의힘 전통적 지지층인 60대 이상이 연합해야 선거에 이긴다고 내가 주장한) 세대포위론을 부정하면서 나서는 걸 보면서 안쓰러웠다”고 말했다.
“생물학적 나이를 기준으로 한 세대포위론이란 말은 신뢰하지 않는다”고 한 한 비대위원장 말을 되받아친 모양새다. 이 전 대표는 “지금은 이준석과 차별화가 아니라 윤 대통령과 차별화를 하라”며 일침을 놓기도 했다. 이 전 대표는 “총선 전 (국민의힘과) 재결합 시나리오는 부정하고 시작하겠다. 선거 뒤에도 총선 이후에도 (연대) 가능성은 약하다”고 천명했다.
국민의힘은 “그동안의 활동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앞으로도 뜻하는 바 이루기를 바란다”는 박정하 수석대변인의 짧은 구두 논평을 내는데 그쳤다. 박근혜 탄핵 이후 지리멸렬했던 당을 재정비해 대선 승리까지 이룬 개국공신에게 가해진 배은망덕의 정치판을 보는 게 슬플 따름이다. 그럴망정 과거 돌풍을 일으켰던 국민의당처럼 산산조각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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