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조하며 사색하는 복받은 결실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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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조하며 사색하는 복받은 결실의 계절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3.09.1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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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무상한 것은 계절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일 것이다. 아무리 꽃이 아름다워도 언젠가는 반드시 지기 마련. 
아직은 한낮 노염이 마지막 기승을 부린다 해도 차츰 이슬이 가을을 알리고 잎이 떨어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건장한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죽는다. 태어날때부터 숙명적으로 죽음을 전제하고 있다.
무상한 것이 인생이다. 가을이 되면 꽃이 지고 잎도 떨어지는 것을 빤히 알면서 그러면서도 지는 꽃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씨가 있을 때 인생의 진면목(眞面目)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다.
이제 백로(白露)도 지나고 추분(秋分)을 맞은 지금 들녘에는 오곡백과가 영그러가는 황금이 파동치고 하늘은 푸르게 부풀어 희망이 솟는 복받은 풍요의 계절인 가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여름에 씨뿌리고 땀 흘리지 않으면 알곡을 거둬들이지 못한다는 진리와 함께 빈 곡간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허전함 처럼! 가을은 정녕 비애의 계절이 아닌가도 십다.
이슬을 먹고 벌레는 자란다. 이슬을 머금은 자연의 풀밭은 한결 아름다워 진다. 그러나 이슬은 허무한 것. 어느새 맺혔는가 하면 어느새 온데 간데 없다. 그래서 흔히 인생을 이슬과 같다고 비유했는지 모른다. 아침 햇살에 비친 오색이 영롱한 이슬은 오래 가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일찍 떨어지는 꽃 떨어지기 쉬운 꽃일수록 더욱 아름답기만 하다. 마치 짤막한 삶의 한순간 한순간을 성실하게 살아가겠다는 마음씨가 담겨 있는 것처럼 아무리 큰 꿈을 안고 있어도 아무리 하는 일이 많아도 인생은 이슬처럼 허무하게 사라진다.
그런줄 알면서도 사람은 한순간 한순간을 충실한 것으로 만들면서 살아나가야 한다.
가을을 흰색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사색(思索)의 계절이라고도 하는가. ‘토머스 홉스’(Thomas Ho bbes)는 많은 책을 읽은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다. 그러나 그에게는 책 읽는 시간보다는 사색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고 한다. 독서의 습관보다는 사색의 능력이 사실은 우리에게 더욱 아쉬운지 모른다.
지긋이 눈을 감고 세상을 관조(觀照)하며 사색의 나래를 펼 때 우리의 마음은 영그는 가을처럼 토실 토실 살찔 것이 틀림 없다.
가을에서 무상(無常)을 느끼는 것도 좋다. 그리고 사라지는 모든 것에 대한 슬픔 속에 흠뻑 젖어드는 것도 좋다. 그러나 인생의 모습이란 색즉시공(色卽是空)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공즉시색(空卽是色)에서 비로소 삶의 모습은 완결되는 것이다.
코 끝에 스치던 바람이 살랑이며 살결에 머물다 한거름 물러나 갈 향을 부른다. 길가의 코스모스 꽃잎에 맴돌던 작은 잠자리 한 마리. 갈바람 타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어느새 가을은 소리없이 다가와 여름 정렬속에 저만치 머물던 살찐 그리움을 토해내고 살포시 웃음지며 윙크하는 초가을 저녁 노을 빛은 하늘을 붉게 물들어 간다.
이슬은 사라졌다가도 어느 사이엔가 또 맺는다. 인생도 매 한가지다. 생겼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 생겨나는 것이다. 살면서 죽음을 안고 죽음속에서 삶을 안고 있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그게 또 가을이 안겨주는 영원한 교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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