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선생님들의 업보(業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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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선생님들의 업보(業報)
  • 서윤배 기자
  • 승인 2011.06.2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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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에서 말하는 업보란 무엇이며 업장이란 무엇인가. 업보(業報)란? 전생이나 금생에 지은 행위[業] 때문에 받는 과보(果報)를 말한다.

 업장(業障)은 좋지 않은 업[惡業] 때문에 정신적 또는 육체적인 장애(障碍)가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우선 국가의 백년대계인 교육현장을 보자. 업보(業報)라는 말이 지금 우리가 지켜보는 현실에 볼대 매우 흡사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 교육현장에 서있는 선생님과 제자들이 아니가 싶다.

최근 60~70년대의 현대사를 떠올리자면 선생님들은 하늘과 땅을 포함한 학생들에겐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강원도 호랑이었다.

어린초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의 그 서슬퍼런 폭력은 그야말로 학교들의 법이었다. 즉 선생님들의 폭력은 그 학교를 치외법권지역 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게다.

폭력 그 자체는 일상화 되어버렸고 학생들은 당연히 선생님들에게 구타를 당해야만 하루가 그렇게 지나가는 구나를 느낄 정도였으니까. 학생의 인권이란 아예 없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선생님들의 구타는 어쩌면 공포의 대상인 일본순사와도 비교가 안될정도로 무지막지한 무서움 그 자체였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은 국가독립을 외치던 독립군과 백성을 잡아다가 모진고문과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둘러왔다.

그러나 해방이 되고나서 우리의 스승이자 선생님들은 무엇을 배웠을까. 학생에 대한, 제자들에 대해 보복이라도 하 듯 폭력적으로 대해왔다.

선생님들은 제자를 훌륭하고 바르게 키우기 위함이라고 애써 변명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존경받지 못한 꼴로 남아있다.

그들 밑에서 갈고 닦아온 제자들 역시 스승의 업보의 유산으로 물려받고 계속되는 폭력은 멈출 줄도 모른다. 그렇다고 모든 선생님들이 다 이렇다는 건 아니다.

6.25전쟁이 끝나고 먹을거리가 없어 굶주리는 학생들이 태반이었다. 미군들이 이들을 먹이라고 갱냉이(옥수수)나 우유, 빵을 엄청나게 공수해주던 시절이 있었다.

이는 강냉이죽과 우유를 쑤어 학생들에게 배급을 해줬지만 배고픈 학생들은 허기를 달래기 위해 더 먹고 싶었도 한정된 배급으로 그냥 아쉬움으로 돌려야 했다.

여기서도 일부 선생님들의 더러운 탐욕은 있었다. 학생들이 배고파 더 먹고 싶어 했던 우유, 아껴야 한다며 더 주지 않았던 선생, 보기만 해도 배고픔이 싹 가시는 우유가 선생님들의 집 한 켠의 창고에 하나 둘도 아닌 백색우유가 들어 있는 대형드럼통을 숨겨놓기 까지 했다.

분명 학생들에게 먹이라는 공수해준 분말우유였지만 이들 대부분이 선생님들의 독차지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수십년이 지난 현실은 어떠한가. 아직도 일부 교사들은 폭력과 억압적 지도방식으로 학생들을 과도하게 체벌하는 사례가 지속되고 있다. 그 습성이 고스란히 스승에게 전해져왔고 교사들의 권위에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최근 인터넷에 여교사가 중학생을 수십 차례나 때리는 모습이 담긴 충격적인 동영상이 퍼져 나갔다. 교사는 한 손으로 남학생의 볼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뺨을 수차례 때렸다.

교사가 발로 학생의 배를 걷어차 학생이 뒤로 튕겨 나가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직도 선생님들의 비이성적인 폭력은 수없이 자행되고 있다.

그러나 작금의 사태는 옛 그 시절에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교사의 막말과 폭력을 비난하며 교사를 폭행하는 사건들이 비일비재 하게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폭력을 가한 교사를 경찰에 고발하는가 하면 일부 학부모들은 학교로 찾아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자녀를 가해했던 교사를 폭행하기도 한다. 이는 학생들을 두둔해서가 아니다.

이는 선생님들의 전생의 업보(業報)를 풀기 위함이다.

지금은 어떤가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휘둘렀던 가해자인 선생님들이 이제는 피해자인 학생들에게 두들겨 맞는 역전현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생님들은 그 누굴 탓하기에 앞서 전생의 업보(業報)를 어떻게 지워야 할지 고민부터 해야 할 때인가 싶다. /경제부장 서윤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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