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초의 장관 탄핵안 가결  
상태바
사상 최초의 장관 탄핵안 가결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3.04.03 16: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지난 2월 8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안(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기본소득당 등 야3당이 이태원 참사 책임을 물어 발의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안을 무기명 표결에 부쳐 재석의원 293명 중 찬성 179명, 반대 109명, 무효 5명으로 통과시켰다.
국무위원 탄핵소추안은 재적 의원 과반(150명)이 찬성하면 의결된다. 국무위원 탄핵안이 국회 문턱을 넘은 것은 75년 헌정사상 처음이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참사가 발생한 지 102일 만이다. 집권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표결엔 참여했으나, 본회의장 안에서 ‘거대야당 슈퍼갑질 협박정치 중단하라’ 등을 적은 손팻말을 들고 강하게 항의했다.

탄핵소추 의결서가 행정안전부와 헌법재판소 등에 송달되면서 이 장관의 직무상 권한은 정지됐다. 국회법 134조 2항은 “임명권자는 소추된 사람의 사직원을 접수하거나, 소추된 사람을 해임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이 장관이 자진사퇴하거나 윤석열 대통령이 그를 해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장관이 없는 행정안전부가 된 것이다.
이 장관은 탄핵안 가결 직후 입장문을 통해 “국민이 국회에 위임한 권한은 그 취지에 맞게 행사돼야 한다”며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성실히 임해 빠른 시일 내에 행안부가 정상화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대정부질문 참석을 위해 국회 내 국무위원 대기실에 머무르면서 탄핵안 가결을 지켜봤고, 그 직후 국회를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은 이 장관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20여분 만에 “의회주의 포기”라며 “의정사에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는 짤막한 입장을 내놨다. 이 장관 탄핵소추를 거대 야당의 잘못된 ‘정치적 공세’로 보는 대통령실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의회주의 포기’란 말에 대한 대통령실 관계자 말을 들어보니 그렇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헌법과 법률을 어겼을 때 해당하는 국무위원 탄핵 요건에 이 장관이 해당하지 않는데도, (민주당 등 야당이) 다수의 폭력으로 감정적으로 밀고 나간 점을 지적한 것”이라고 말한다. “탄핵소추로 인한 이 장관 직무 정지로 벌어질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헌법재판소가 빠른 판단, 양심적 평결을 해주길 기다릴 뿐”이라고 말했다.
2022년 11월 7일 열린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안전 주무부처 책임자인 이 장관 경질론을 겨냥해 “엄연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에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지라 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며 이 장관을 감싼 윤 대통령은 머쓱하게 되었다. 윤 대통령은 탄핵안 통과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을 내놓진 않았다.  
당시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헌정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는 반헌법적 폭거이자 의회주의 파괴”라고 말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헌재에서) 탄핵이 기각되면 민주당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며 “내년 선거에서 국민들이 민주당의 이러한 행태에 다수 의석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는지 분명히 심판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윤석열 정권은 책임 회피로 일관하며 국민 앞에 답을 내놓지 않았다”며 “야3당은 헌법과 국회법에 따라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것”이라고 말했다. 도대체 무엇이 ‘헌정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인지 모를 일이다. 오히려 159명의 애먼 생목숨이 끊어진 참사에도 주무 장관이 책임지고 물러나지 않는 게 ‘헌정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 아닌가?
주 원내대표 말처럼 만약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안이 기각돼도 민주당이 전적으로 책임질 일은 아니다. 유가족들의 한(恨)을 풀어주는 야당으로서의 소임을 다한 것이라서다. 또한 탄핵안 기각이 내년에 있을 총선의 문제는 아니다. 이야말로 여당인 국민의힘이 국가적 참사를 정쟁의 도구로 삼거나 정쟁으로 이용하는 정치적 공세가 아닐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과거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중대한 헌법·법률 위반’이 있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면서 대통령이 아닌 공무원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경미한 법 위반으로도 파면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 공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헌법재판소는 최장 180일 안에 결론을 내야 한다. 탄핵안이 인용되려면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국회 내 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탄핵안 통과를 지켜본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국회가 역할을 해준 것에 감사하다”고 밝혔다.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대통령이 이 장관을 파면했다면 이렇게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며 “헌법재판소에서 어떠한 판단을 내리는지도 유가족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할 일이 태산인 국회가 왜 국무위원 탄핵안을 발의하고, 사상 최초로 통과까지 시켰는지 이 장관 본인은 물론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모르는 모양이다. 159명의 애먼 생목숨이 끊어진 참사가 벌어졌는데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책무가 주어진 대통령·장관 등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아서 급기야 탄핵안이 발의되고 통과된 것임을 되새겨본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