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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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통령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3.03.1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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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칼럼 ‘국민 사표내고 싶어’(전북연합신문, 2016.11.30.)는 검찰 및 특검조사를 받은 헌정사상 최초의 현직 대통령이라는 역사를 새로 쓴 박근혜 정권 시절 쓴 글이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은 1,577만 3,128명은 무엇에 단단히 씌었거나 홀렸던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낼 길이 없다고 썼다.
또 도저히 일국의 대통령이라 할 수 없는 온갖 악행과 추문들이 화수분처럼 솟구치는 박근혜 후보를 어떻게 뽑을 수 있었는지 개탄하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억장이 무너지지 않는 게 없지만, 특히 그 ‘찌질함’은 압권이라 할만하다. 과연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맞을까 하는 의구심이 떠나지 않는, 참으로 찌질하고 쪼잔한 내용들을 적시했음은 물론이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가 하이라이트라 할만하지만, 가령 정부에 비판적인 글을 쓰거나 성명서에 이름 한 줄 올린 사례까지 샅샅이 훑어 배제한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진 국립대학교 총장 임명 거부라든가 CJ그룹에 대한 과징금 부과 및 이미경 부회장 퇴진 압력 등이 그렇다. 피고인 최순실 딸 정유라의 승마대회 성적을 둘러싼 대통령 대응도 있다.
문체부 조사에서 최씨와 승마협회쪽 모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고서를 올린 국·과장 등을 “나쁜 사람”이니 “아직도 그 사람이 있어요?”라며 애먼 공무원을 몰아낸 대통령이니 더 말할게 뭐 있으랴. 정유라 친구 부모 기업까지 챙겨주느라 사기업인 현대자동차에 청탁을 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진짜 대한민국 국민을 사표내고 싶은 나날이라고 끝을 맺었다.  
본의 아니게 어통령 시대를 살게 되면서 다시 대한민국 국민을 사표내고 싶은 생각이 치밀어 오른다. 어통령은 ‘어쩌다 대통령’을 줄인 말이다. 한겨레 칼럼 ‘어쩌다 대통령의 시대’(2022.3.30.)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어쩌다 대통령이 된 ‘어통령’이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라고.
글쓴이 손원재 논설위원은 이어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2022.3.22.)이 “그야말로 ‘어쩌다’ 대통령이 된 사람”이라고 했다는 말도 덧붙인다. 윤 당선자 스스로도 누누이 “국민이 불러냈다”는 말로 어쩌다 대선에 나선 상황을 설명했다는 말과 함께다. 그런데 ‘김대중 칼럼’을 읽어보니 덕담 차원에서 한 말로 보인다.
“하지만 윤 당선인에게도 ‘무기’는 있다. 엄밀히 말해 윤석열은 정치인이 아니다. 정당인도 아니다. 체질이 다르다. 그야말로 ‘어쩌다’ 대통령이 된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잃을 것이 없다. 제도와 법이 허용하는 한, 소신대로 대통령 노릇 하고 물러가면 된다. 부담 없이 ‘윤석열다운 정치’를 한번 해보는 것이”라 끝맺고 있어서다.
논조가 정반대인 두 신문의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시각차가 확연히 드러나지만, 손 논설위원은 “‘어통령’이 됐다는 건 윤 당선자가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자질과 능력을 인정받아 당선된 건 아니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가 국정 운영을 잘할 거라고 믿어서 지지한 국민이 많지 않다는 것이”라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윤 후보 지지층의 64.8%가 지지 이유로 ‘정권교체를 위해서’를 꼽았음을 들며 확실히 못박았다. “1차적으로 강경 보수층의 정권 탈환 욕망이 그를 유력 대선 주자로 띄워 올렸고, 여기에 현 정부의 집값 폭등과 세금 인상, ‘내로남불’에 성난 민심이 가세해 어쩌다 ‘윤석열 대통령’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고.
손 논설위원은 “준비되지 않은 ‘어쩌다 대통령’이 탄생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은 물론 그에게 투표한 지지층마저도 당황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이란 지적도 했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취임 10개월을 넘겼는데도 윤 대통령이 ‘어통령 본색’에서 화끈하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어쩌다 대통령이 되었어도 남부럽지 않게 대통령직을 수행하면 불거진 이런저런 문제가 대부분 묻힐텐데 그게 아니다. 오히려 김대중 칼럼에서 말한 ‘윤석열다운 정치’만 난무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새 역사를 쓰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을 보는 것은 되게 괴로운 일이다.
하긴 나로선 박근혜 정권에서 한직으로 좌천됐다가 문재인 정부서 서울중앙지검장에 이어 검찰총장을 지낸 검사 윤석열이 국민의힘 후보로 대통령이 된 그 자체가 지금까지도 믿어지지 않는다. 자신을 알아봐준 임명권자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결초보은은커녕 오히려 지난 정부 때리기에 급급하니 이런 배은망덕이 어디에 또 있을까 싶다.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을 해놓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내가 지닌 상식으로는 도저히 용납이 안된다. ‘배신 때리기’가 회심의 한 방이고 신의 한 수였다니 너무 비정한 정치판이다. 어쨌든 그런 욕망으로 대통령이 되었으면 모든 국민을 위해 잘해야 맞는데, 어통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해야 할지 참담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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