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신인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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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신인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해법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3.02.13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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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대법원은 2018년 10월 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전범기업 2곳에 각각 강제동원 피해자 15명에게 1인당 1억 원 또는 1억 5천만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해당 기업들이 배상 협의에 응하지 않은 건 물론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 명단) 제외 등 경제보복을 자행했다.
그 무렵 나는 ‘이참에 단교(斷交)는 어떤가’(전북연합신문, 2019.8.21.)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과거 조선을 식민 지배한 가해자 일본제국주의는 온데간데 없고 경제대국 일본이 대한민국을 압박하고 있는 형국에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속담이 저절로 떠오른다며 그렇게 과거사 반성과 사과는 하지 않는 행태를 이어간다면 이참에 그들과의 단교(斷交)는 어떤가, 주장했다.

그리고 일본과의 역대급 나쁜 관계의 본질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일본 땅이라 주장하는 독도라든가 강제동원한 적 없다고 우기는 위안부 문제 등 자신들이 저지른 침략전쟁의 역사마저 부정하고, 이미 인정했던 사실과 사과조차 번복하는, 기본이 안된 나라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제국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원시 국가’임을 전제로 한 주장이다.
단교하리란 확신은 없었지만, 최근 분통 터질 일이 또 생겼다. 정부가 내놓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해법이 그것이다. 정부는 1월 12일 외교부와 정진석 한일의원연맹 회장이 국회에서 공동 주최한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재원을 마련해 피해자들에게 대신 변제하는 방안을 공식화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수혜를 받은 포스코·외환은행·한국전력 등 한국 기업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외교부는 이 자리에서 일본 전범기업의 사죄와 배상 없이도 이 방침을 이행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피해자 쪽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거쳐 이런 방안을 최종안으로 확정할 계획이다.
정부가 한-일관계 정상화에 속도를 내는 최대 명분은 북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 등 안보협력 필요성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선 2018년 10월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확정 판결 이후 수출 규제 등 일본 쪽의 보복 대응이 이어지면서 ‘수교 이후 최악’으로 치달은 한-일 관계를 복원해야 한다는 게 정부측 논리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 정부·기업의 배상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피해자들과 거리가 먼 해법이다. 피해자 쪽에서는 “일본 책임을 즉시 면책해주는 것”이라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피해자 쪽과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1월 13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굴욕적 강제동원 해법 발표 반대’를 위한 촛불집회를 열기도 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미쓰비시중공업 피해자)는 1월 17일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내가 바라는 건) 돈이 아닌 사죄”라고 밝혔다. “한국에서 주는 돈은 받지 않겠다. 사죄를 받기 전까지는 일본이 주는 돈도 받지 않겠다”고 말하며 정부가 내놓은 이른바 해법을 강하게 성토했다.
그뿐이 아니다. 일본의 학자·변호사·언론인·시민사회 활동가 등 94명이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자 부재로는 해결이 될 수 없다-‘징용공’(강제동원) 문제, 일본 정부·일본 기업에 호소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수십년 동안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지원해 온 일본 시민사회가 기자회견을 통해 문제점을 강하게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일본 시민사회는 무엇보다도 수십 년을 싸워온 피해자들이 수용할 수 없는 해법은 해결책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해법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못박았다. “진정한 사과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와 배상을 하고,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일과거사의 법적 쟁점에 천착해온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창록 교수는 한겨레(2023.1.16.)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일본의 잘못된 주장과 행태를 정당화시켜주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정부의 처분이 이뤄지면, 피해자들은 오랜 세월 싸워 얻은 정당한 권리(대법원 확정판결에 따른 배상)를 침해당하게 된다. 우리 헌법이 규정한 재산권과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는 처분이기에 위헌이고, 헌법소원이 가능해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만약 정부안대로 시행하면, “일본 정부는 ‘우리가 완전히 이겼다’고 주장할 것이다.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란 점도, 강제동원이 없었다는 점도, 식민지배는 불법강점이 아니라 합법지배란 점도 ‘한국 정부가 인정했다’고 할 것이다. 한국이란 국가의 정체성에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 정신에도 반한다”고 주장했다.
일제가 자행한 강제노역으로 나라 뺏긴 설움의 평생 한(恨)에 더해 다시 한번 피해자들에게 피눈물을 토하게하는 정부는 과연 제정신인가. 왜 독일과 다르게 ‘전범국가 미청산’의 그런 나라와 아등바등 관계를 개선하려는 것인지, ‘우리편’ 미국과의 굳건한 동맹으로도 모자라 ‘아쉰놈’이 되어 해결사를 자처하는지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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