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일 같지 않은 유럽 에너지 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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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일 같지 않은 유럽 에너지 대란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2.02.1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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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과도한 에너지의 전기화재생에너지 불안정성에 이상기후 결합해 빚어진 것이 작금의 유럽. 에너지 위기 우리는 얼마나 다른가.
대규모 에너지 대란, 그중에서도 유럽과 텍사스의 전기 가격 폭등을 설명할 때 ‘블랙스완(Black Swan)’이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된다. 블랙스완은 하얀 백조만 있는 줄 알고 있을 때 발견된 검은 백조처럼 경험한 적이 없는, 그래서 예측할 수 없었던 이례적인 사건 중 일단 발생하면 경제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는 사건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에너지 대란이 ‘블랙스완’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에너지 대란이 예상하지 못한 다양한 충격이 결합하며 발생한 것은 사실이다. 시작은 천연가스 수요 충격이었다. 세계 경제가 회복되며 천연가스 소비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기후변화 영향으로 북극의 찬바람이 남하하며 2021년 겨울 유럽, 미국, 중앙아시아에 한파가 몰아쳤고 그 결과 난방 수요도 급증했다.
급증하는 수요를 공급이 맞춰주지 못하면 가격 상승은 당연하다. 특히 자체 생산 여력이 없거나 약한 아시아와 유럽은 천연가스 가격 상승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상황이 이러면 유럽의 최대 천연가스 공급자 러시아는 유럽에 장기 계약분 이외의 물량을 추가 공급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유럽 천연가스 재고율이 60% 미만으로 떨어지고 가격이 폭등했지만 러시아는 추가 물량 공급에 난색을 표했다. 이러한 러시아의 돌변으로 이미 러시아 의존성을 갖게 된 유럽 천연가스 시장은 크게 요동쳤다. 가스관이 통과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군사적 갈등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고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작년 한 해만 600% 가량 상승했다.
천연가스는 다른 에너지에 비해 가격은 비싸지만 비축이 가능하고 스타트업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든다. 이런 이유로 어느 나라나 석탄, 원자력, 재생에너지를 기저 전원으로 구성한 후 전기 수요가 높거나 비상전원이 필요할 때 천연가스를 활용하는 전력 시스템을 구축한다. 
유럽과 텍사스는 이례적 한파로 난방 수요가 급증하자 더 많은 천연가스를 전기 생산에 투입해야 했다. 폭설과 결빙으로 풍력발전이 제한되자 천연가스 수요는 더욱 급증했다. 하지만 지난 여름 풍력을 대신해 전기를 생산하느라 재고율이 사상 최저로 떨어진 천연가스의 공급 여력은 매우 낮았고 전기 가격은 폭등했다. 유럽 전기 거래 가격은 작년 12월 메가와트시(MWh)당 382유로로 2009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한 데 이어 올 1월에는 400유로를 넘어섰다.
전기 가격 상승이 물가와 수출경쟁력에 주는 충격은 과거보다 크다. 우리가 전기 의존적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의 전기화 정도가 높고 전기 생산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유럽과 텍사스가 더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자체가 문제였다기보다 재생에너지가 가진 불안정성과 이상기후에 대한 취약성에 충분히 대처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유사한 조건이라면 이 블랙스완은 언제 어디서건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이제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보자. 전기차 보급과 디지털 전환으로 전기 소비가 급증하고 있지만 전기 가격 현실화에는 미온적이다. 탈원전과 탈석탄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를 대체할 재생에너지 확보 여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유럽과 텍사스에서 확인된 재생에너지의 기후 취약성을 고려하면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선 투자가 필요하고 비상 상황에 대비해 비용이 만만치 않은 에너지 저장장치도 설치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부족분을 메꿔줄 수소는 대부분 해외 공급으로 충당한다고 하니 에너지의 해외 의존성도 높아질 전망이다. 
이런 상태라면 가까운 미래에 한국에서 전력 대란이 발생해도 놀랄 것이 없다. 사실 블랙스완 사건 대부분은 돌이켜보면 뻔하거나 피할 수 있었던 사건을 둘러싼 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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