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배 주필
시민이 권력에 의한 일자리 배분에 중독돼 갈수록 그 나라는 전체주의 체제로 빠져들 가능성이 커진다.
러시아의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는 이를 두고 “일하지 않는 사람이 굶어 죽는 게 아니다. 복종하지 않는 사람이 굶어 죽는다”고 예언했다. 한국 사회에 한때 이런 유혹의 손길이 뻗친 적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통령에 취임한 후 처음으로 주재한 청년 일자리 점검 회의에서 “각 부처에 ‘일자리는 민간이 만드는 것이다.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식의 고정 관념이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부로 하여금 ‘모범 고용주’가 될 것을 지시했다.
대통령의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옳을까. 이제라도 진실을 깨달았다는 회오(悔悟)의 마음인지, 아니면 자기 실책은 외면한 채 일자리가 줄어든 것은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제 할 바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뒤집어씌우려는 것인지 감을 잡기 어렵다. 둘 다 아니면 혹시 같은 당 대선 후보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전하려는 마음은 아니었을까. 그렇다 한들 이재명 후보가 경청하는 것 같지는 않다. 현 정부의 과오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한 발 더 나가고 있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청년에게 1인당 연 200만 원씩 지급하겠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청년을 포함한 국민 모두에게 ‘1000만원 마이너스 통장의 기본대출’ 공약을 내놓더니 요즘엔 최대 5년 전의 월세도 공제해주는 이월공제 도입까지 약속한다.
그럼 2030은 이 같은 청년대책에 만족하거나 지지하고 있을까. 불행히도 2030은 ‘무당 경제학(voodoo economics)’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듯하다. 이 후보가 제안하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 20만∼30만원 추가 지급조차 국민 60.1%(20대 68.0%, 30대 60.9%)가 반대하는 마당에 현금 살포성 일자리 대책들이 ‘뻥’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눈치 챌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권력이 나눠주는 일자리의 속성은 이미 경험한 바 있다. 2030 특히 MZ세대가 원하는 일자리는 제대로 된 기업이 제대로 만든 일자리다. 그것이 자신의 삶과 미래를 확고히 구축해나갈 수 있는 도약대라고 생각한다. 이런 프로세스를 실현할 청년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한 그들의 마음을 사기는 어렵다.
진정으로 이 나라 젊은이들의 미래를 고민한다면 우리나라의 대기업을 10개 더 만들겠다고, 스타트업들이 마음껏 기지개를 켤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해 보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신년사에서 말했듯 “기업 할 맛 나는 세상”이 출현한다면 굳이 대통령이 나서지 않더라도 기업들 스스로 젊은이들을 찾아 나설 것이다. 5·16군사혁명 후 삼성의 이병철 회장은 박정희 장군을 찾아가 기업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기업을 죄악시하면 일시적으로 국민의 인기를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경제는 발전시킬 수 없으며, 오히려 국민이 피해를 보게 된다고 직언했다. 과격한 개혁을 부르짖던 영관급 장교들과 달리 박정희는 이병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때부터 정부와 기업은 경제 발전의 파트너가 됐다. 그 만남이 세계 10위 경제 강국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정치인들은 이런 역사의 교훈을 망각했고 젊은이들은 ‘잃어버린 세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전북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