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둘러싼 주변국 4강 각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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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둘러싼 주변국 4강 각축전
  • 허성배
  • 승인 2017.02.1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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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논설위원

구한말 한반도는 열강의 놀이터였다. 청나라와 일본, 러시아는 동북아시아 패권을 놓고 우리 앞마당에서 땅뺏기를 했다. 당시 지도자들은 무지했다. 국제 정세에 어두웠고, 열강 눈치를 보느라 제 구실을 못했다.
1882년 임오군란을 시작으로 갑신정변, 청일전쟁, 아관파천, 러·일 전쟁이 잇달아 터지면서 권력은 청에서 러시아로, 다시 일본의 손아귀로 들어갔다. 그들에게 조선의 안위나 백성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무력한 지도자들은 역사의 변곡점마다 특정 국가에 의존하려 했지만 돌아온 건 망국(亡國)의 비애였다.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고종은 불난 데 기름을 부었다. 서로는 개인적 원한에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개인적으로도 비참한 말로를 맞았다. 청나라에 기대려던 명성황후는 일본 낭인에게 난자당한 뒤 불살라져 흔적조차 찾지 못하는 운명이 됐다.
일본을 후원 세력으로 믿었던 대원군은 청나라를 몰아내려다 3년 동안 감금되는 굴욕을 겪었다. 아관파천 뒤 러시아 공사관에 머문 고종은 그 대가로 온갖 이권을 고스란히 내줬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적어도 오늘의 우리가 그런 꼴이다. 교훈을 얻기는커녕 과거를 망각한 탓이다. 2017년 새해 벽두부터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은 120년 전보다 조금도 나아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탄핵절차가 진행 중인 가운데 우리의 외교 리더십은 장기간 공백 상태다. 이 틈에서 한반도 주변 4강인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는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다. 말이 좋아 외교전이지 내용을 들여다보면 총성 없는 전장(戰場)과 다를 게 없다.
트럼프 정부 출범과 함께 벌써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지렛대 삼아 시진핑(習近平) 협공에 나섰다. 우리 외교 안보의 환경 변화가 불가피할 것임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메티스 국방부 장관은 "북한에 대한 군사대응도 하나의 옵션"이라고 밝혔다. 북핵 해법 중 하나라지만 우리 입장 따위야 별다른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국가 이익을 최우선 시하려는 일련의 움직임에서 을사늑약의 빌미를 제공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떠올린다. 당시 미국은 필리핀에 대한 식민지 통치를 인정받는 대가로 대한제국 외교권을 일본에 넘겼다. 중국의 위협은 더욱 현실적이다. 사드 보복이 구체화하면서 전기 전자와 철강·자동차·관광· 화장품 같은 업종에 불똥이 튀었다.
보복은 드라마나 공연예술 등 문화에 이어 스포츠로까지 번져 우리 축구 선수들의 영입을 꺼리고 있단다. 그런 한편 중국의 시 주석은 다보스포럼에서 보호무역주의에 대해 "자신을 어두운 방에 가두는 행위"라고 비판하며 자유무역의 수호자를 자처했다. 한국의 정치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 어르고 달래겠다는 술수다.
우리나라 지도자의 절제된 언행과 비전이 절실한 상황이다. 한반도를 삼킬 듯 넘실대는 4각 파고를 관리하고, 해법을 제시해달라는 얘기다. 대한민국 외교가 미로를 헤매고 있지만 대권 주자들은 권력 노름에 빠져 국익에 치명타를 입히는 발언과 행적으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안보의 최후 보루인 유비무환(有備無患) 문제는 정치권의 협치(協治)가 절실한 때다.
외교 리더십이 절벽 앞에 놓인 상황이기에 지도자들이 더욱 중심을 잡고 머리를 맞대 활로를 찾아야 한다. 폭우가 쏟아지면 비닐우산이라도 펼쳐야 하는 법이다. 대권   주자들은 이제라도 안보의 탈정치를 선언하기 바란다. 120년 전 처럼 한반도가 패권주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걸 두고 보지 않겠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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