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의 행동이 없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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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의 행동이 없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 차덕호
  • 승인 2015.01.01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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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호 교수 신년 특별기고> 새해 한국사회에 바란다
갑오년이 저물어 가고 ‘희망의‘라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는 을미년이 밝아 왔다. 
 
  ‘지난해’는 늘 ‘다사다난’이란 어휘로 수식하는데 또 한 해도 마찬가지다.
 
  기대했던 갑오년 말띠 ‘청마’는 세월호와 함께 침몰하여 일 년 내내 허우적거렸고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막히는 세월호 아직도 미결의 상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신채호선생과 처칠이 한 명언이다. 비슷한 말을 한 다른 인사도 있겠지만.
 
  ‘역사를 잊는다’는 ‘망각은 하고 성찰은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역사를 잊지 않아야 함은 기본이고 그에 상응하는 행동이 수반되어야 함을 짚어 보지 않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임진왜란과 왜구로 대표되는 침략과 만행의 역사를 잊진 않았겠지만 비운의 역사를 다시는 후손에게 주지 않으려는 조치의 행동을 취하지 못 했기 때문에 왜국(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는 징용과 지울 수 없는 위안부의 고통을 안았다.
 
  작금의 상황은 어떤가. 
 
  인도는 좀 멀리 있으니까 차치하고, 수천년 우리를 괴롭혀온 인접 중국과 일본은 우주공학 분야에서도 미국과 경쟁하는 수준에 있다. 우리는 돈 주고 소련을 업고서도 작은 인공위성 하나 올리기도 힘들어 하는데 말이다. 우주전쟁이란 말도 이미 등장했는데 남의 이야기로 그냥 듣고만 있어야 하는지..
 
  일본의 노벨과학상 수상은 1949년부터 이루어졌는데 한국과 일본의 수상자수의 대비는 0 : 13이다. 개인이든 국가이건 힘이 없으면 당하는 것이 논리다. 소위 힘의 논리이고 무력의 질서다.
 
  임진왜란은 조총 앞에 활이 힘을 쓸 수 없었다. 일본 개국의 시절 사쓰마(일본) 포대의 대포는 미국의 페리호 보다 포사거리가 미치지 못 해 막을 수가 없었고, 일본의 막부 말기 무진(戊辰)전쟁에서 구막부군이 신정부군에 패한 가장 큰 요인의 하나는 장총의 실탄 장전 속도가 느리고 사거리가 짧은 데 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안보는 첨단 신무기의 개발 확보가 1순위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대학생도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는 말도 나도는 현금에 일부 우국(?) 정치인들의 ‘우리도 핵을 보유하자’는 주장은 스텔스전투기가 주종인 오늘날 6.25때 쓰던 F86세이버를 보유하자는 말과 다름 없다. 일본은 이미 차세대 스텔스 개발에 발을 내딛었고 스텔스 잡는 레이더까지 개발에 착수했다고 하는 마당에 스텔스와 핵을 넘어서는 것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적국에서 날아오는 탄두를 발사지점으로 되돌리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하면 완전 만화 같은 공상이라고 폄하할지 모르겠지만 많은 공상과학이 현실로 결실을 맺고 있다. 
   빈곤의 60년대 ‘수출만이 살길’이라고 했다면 지금은 ‘첨단 과학의 융성만이 살길’이라고 말하고 싶다. 치솟는 전세 값과 풀릴 줄 모르는 불경기에 허리 휘는데 얼어 죽을 과학이냐는 불평도 있을 수 있지만 너도 나도 과학 하자는 말은 당연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각자 하고 있는 일에 정성을 다 하고, 거기에 한 눈 팔지 않아도 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분위기는 개인의 마음가짐도 중요하지만 정부와 같은 주도 세력의 뒷받침이 요건이기도 하다
 
  개인의 인생도 반성과 성찰의 과정 위에 실천이 없으면 공염불이다. 담배가 건강에  좋지 않다고 반성하면서도 여간해서 끊지를 못 한다. 그래도 안 피우려고 노력하고 금연해야 하듯 지금은 공상의 범주라고 하더라도 첨단 과학에의 열정과 추진을 불 살리고 멈춰서는 안 된다. 자고 나면 보수고 진보고 떠들 때가 아니다!
 
  을미년 양의 해를 맞아 독자 여러분의 가정에 양털처럼 포근하고 따뜻한 한 해가 깃드시기를 두 손 모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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