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청소년들의 사람됨의 위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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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청소년들의 사람됨의 위기<1>
  • 김정기
  • 승인 2014.02.17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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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미래 세대인 청소년들에게 몸으로 배우는 교육 시설이 필요하다.
사람의 일생 가운데 특별하지 않는 시기는 없을 것이다.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모두 의미 있고 중요한 시기다.
우리 인생에서 어느 한 순간도 흘려버릴 수 없는 것처럼...
 
내 경험을 비추어 보거나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 바에 따르면. 청소년 시기를 통과하기가 가장 어려운 것 같다. 청년기 이후에는 본인이 겪는 그 시기의 특징과 자신의 장단점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준비가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청소년기를 통과하는 청소년은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자신이 겪은 사춘기를 떠 올려보면, 어느 날은 세상을 다 산 노인처럼,  또 어느 날은 장난감을 뺏긴 어린이처럼 굴었던 기억이 날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없는 게 청소년이다.
 
청소년기는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면서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나타나는 변화들을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때이다.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 시기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실수를 해버리면 좀처럼 만회하기가 어렵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패자 부할 전”도 제대로 없다.
 
나는 청소년들의 숨통을 틔워 줄 수 있는 것이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혼란한 마음은 몸으로 다스리면 좋다. 몸으로 에너지를 발산해야 된다는 뜻만은 아니다. 청소년 시기는 한 인격체로서 성장해 나가면서 다른 인격체 또는 다른 세계 속에서 조화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기틀을 마련하게 되는데, 이 때 몸과 몸을 부딪쳐서 터득한 우정이나 믿음, 지도력이나 협동심 등은 평생 잊히지 않을 만큼 중요한 배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미국 영화 (리멤버 타이탄) 은 인종갈등이 잔존하던 1970년대. 미국 남부 버지니아 주 한 도시에 처음으로 생긴 흑백인 통합 고등학교들의 미식축구팀 이야기가 주제였다.
풋볼을 하는 백인 학생들에게 흑인 학생들과 한 팀이 되는 건 당시에는 하늘이 두 쪽 나도 있을 수 없는 일이였다.
 
부모들까지 나서 전학을 고려하지만 대학 진학 문제가 걸려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인데. 엎친데 겹친 격으로 흑인 코치까지 부임을 하게 되는데. 흑인 학생들은 새 코치를 맞아 기대감에 부푼다. 그러나 흑인 학생들도 백인 학생들과 함께 풋볼을 할 생각은 꿈에도 없다.
 
코치는 합숙 훈련을 진행되는 동안 흑백으로 나누어 팀을 공격과 수비로 분담해 팀워크를 이루려 하지만 소용이 없다. 흑인의 뛰어난 수비수는 개인기에 몰두한다. 주장인 백인 학생은 유일하게 흑인 학생과 친하게 지내는 백인 학생을 `왕 따`시킨다. 심지어 작당을 해서 불로킹을 해주지도 않는다. 코치는 새로운 훈련 과제를 낸다. 한 방을 쓰는 룸메이트에 대해 알아 오는 게 새로운 과제였다. 흑인 학생과 백인 학생이 룸메이트다. 과제를 완료하지 못하면 연습량은 날마다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룸메이트에 대해 알지 못하면 오늘의 연습량은 어제의 두 배. 내일은 오늘의 두 배가 된다. 고된 훈련으로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된 학생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닫아 놓았던 마음의 빗장을 주금씩 풀게 된다.
 
합숙훈련 마지막 날. 이들은 남북전쟁 당시 5만 명이 죽어간 게티스버그의 묘지에서 증오 대신에 이해와 존중의 마음을 넓히면서 사나이다운 시합을 벌일 각오를 다진다. 쿼터백이 사고를 당해 출전을 못하는 곤경에 처하고. 막강한 팀을 맞이하여서도 서로를 믿고 최선을 다하여 경기를 펼친다. 이들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신(巨?)이 되어 도시의 자랑이 자 긍지가 된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스포츠를 통한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새삼 깨달음을 지금도 지울 수 없고 내 뇌리에 생생히 자리 잡고 있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머리로 받아들이는 공부가 전부가 아닌 것이다.
영화 (리멤버 타이탄)의 청소년들은 풋볼을 통해서 갈등을 푸는 법, 단결력과 협동심을 공부한 것이다.
 
청소년에게 스포츠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다들 고개를 주억거리지만. 막상 청소년이 운동을 할 스포츠시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현제 청소년을 위한 시설은 문화와 스포츠
를 겸한 센터가 시. 군. 구별 도는 지방자치단체별로 한 곳 정도씩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과거에 비하면 이것만 해도 어디인가 싶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여전히 청소년을 위한 스포츠시설은 부족하다.
 
일산의 호수공원과 분당의 율동공원은 크기로는 동양에서 손가락 안에 들어가지만, 정작 누구를 위한 공원인지 궁금할 때가 많다.
 
우리는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팔도에 가지고 있다. 인위적인 조경공사로 값비싼 조경수와 잔디를 심어놓고. 그곳에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공원. 그래서 또 관리인을 두고 예산을 잡아먹는 현실을 볼 때마다 나는 우리의 청소년들이 생각난다. 나 같으면 그 드넓은 땅 위에 나무는 적게 심고 나머지 공원 땅에 천연 잔디를 심어 축구장. 야구장. 그리고 농구장 게이트볼 게임장 등을 만들어 남녀노소. 가족단위 특히 청소년들이 맘껏 뛰고 뒹굴고 넘어져도 부상에 걱정 없이 놀 수 있는 스포츠공원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것이 공공이 마련할 수 있는 최고의 교육 장소가 아닌가?
지금의 현실은 사람을 위해 공원이 있는 게 아니라 공원을 위해 사람이 있는 꼴이다.
영국이나 미국 같은 나라들은 어떻게 공원을 관리하고 활용하는지 연구가 필요할 듯하다.

/김정기 한국정치사회 숲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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