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만은 아니므니다! 익산나바위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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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만은 아니므니다! 익산나바위성당
  • 문공주 기자
  • 승인 2012.11.2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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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5일 문화재청은 사적 제318호인 화산천주교회를 익산 나바위성당(益山 나바위 聖堂)으로 명칭 변경을 고시했다.
이는 전국적으로 ‘화산’이라는 명칭이 사용되는 성당이 혼란이 초래되고 있고 실제 지역에서 사용하고 있는 명칭을 반영한 것이다.

나바위 성당은 1845년 10월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중국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고 페베올 주교, 다블뤼 신부와 첫발을 내딛은 곳으로 이를 기념하여 세워진 성당이다. 현재 성당 입구에 발모양의 화강석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1897년 본당 설립 당시 '화산본당'이라 불렸지만 1989년부터 '나바위성당'이라 불렸다. 성당이 위치한 곳이 화산(華山)이다. 조선 후기 문신이었던 우암 송시열 선생이 산세가 아름답다 하여 ‘화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화산 산줄기 끝자락에 광장처럼 너른 바위가 있다.
이 성당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요셉 베르모렐(한국명 장약실) 초대 신부에 의해 1907년 순수 한옥 목조건물로 지어진 후 1916년까지 증축을 거듭하면서 한·양 절충식 건물로 형태가 바뀌었다. 이 독특한 건축 양식 때문에 1987년 7월에 국가문화재 사적 제318호로 지정됐다.
성당 앞면은 고딕양식의 3층 수직종탑과 아치형 출입구로 꾸며져 있고, 지붕과 벽면은 전통 목조 한옥 형태이다. 기와지붕 아래에는 '팔괘'를 상징하는 팔각 채광창이 사방으로 나 있고, 처마 위마다 십자가를 세워 놓았다. 특히, 회랑이 있어 한국적인 미를 맛 볼 수 있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면 세월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바닥은 나무로 되어 있으며 반질반질 윤이 나있다. 성당을 처음 지었을 때 깔았던 나무 그대로다.
중앙 통로 한가운데 남녀가 따로 미사를 볼 수 있도록 자리를 구분하는 칸막이 기둥이 세워져 있다. 창문은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닌 한지로 되어 있어 정겹다.
제단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개혁 이전 사제가 신자석에 등을 돌린 채 미사를 봉헌하던 옛 제대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이 제대는 초대 본당주임이었던 베르모렐 신부가 프랑스와 중국에서 제대 부품을 몰래 들여와 조립한 것이다.
옛 제대 바로 옆 제대에는 1995년에 전주교구청에서 옮겨온 김대건 신부 성해 일부(목뼈)가 안치돼 있다.
여러 성물들은 성당 건축 시 중국에서 제작하여 들여 온 것이며 색상 및 원형이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
성당 뒤편에는 야외 제대와 '평화의 모후' 성모 동산이 있으며, 화산 정상까지 '십자가의 길'이 조성돼 있다. 이 십자가의 길을 따라 화산 정상에 오르면 '김대건 신부 순교 기념비'와 '망금정'이 있다.
화강석 축대 위에 설치된 순교 기념비는 총 높이가 4m 50cm로, 이곳이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고 조선에 첫 발을 내디딘 곳임을 알리기 위해 김 신부가 타고 왔던 '라파엘호'를 연상하여 지어졌다.
나바위성당은 우리 민족의 수난과 애환을 함께 해왔다.
초대 주임 베르모렐 신부는 지역 유지와 함께 1908년 성당 안에 소학교(초등학교)인 '계명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했다. 1947년 폐교될 때까지 신사참배에 저항하는 한편 애국계몽운동을 통한 구국에 앞장섰다.
또한 1949년 간이진료소인 '시약소'를 설립하여 1987년 폐쇄할 때까지 40년 가까이 가난한 농민들의 건강을 돌보았다.
 
 /익산=문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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