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의 청순미(淸純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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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의 청순미(淸純美)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3.12.1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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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여인의 여인다운 아름다움은 부끄러워 하는데 있고 여인만이 갖는 신비는 살며시 감추는데 있다고 하면 현대 감각을 거스리는 말이 될까?
나는 여인의 그러한 자태에서 품위 있는 정숙미(貞淑美)를 보고 그윽한 매력을 느낀다. 살짝 얼굴 붉히며 웃음짓는 표정에서 함초로운 여성미가 피어나고 다소곳한 몸매에서 치렁한 순정이 흐른다. 그 아름다움 속에 호심(湖心)의 고요와 달무리의 으스름이 깃들어 있고 초원(草原)의 여유와 청자(靑瓷)의 기품이 서려 있다. 심산유곡에 피어 있는 백합화가 청아롭기로서니 이에서 더하며 미풍에 하느적이는 요요(夭夭)로운 실버들이 유연하기로서니 이에서 지날까.

‘정든 임이 오시는데 부끄러워 인사를 못해 자주 고름 입에 물고 입만 방긋’한다는 노래 속의 여인상은 고아(古雅)로운 한국적 정숙미의 극치가 아닐까 싶다. 못내 사모하는 낭군을 오랜만에 맞는 기쁨에 심장이 뛰고 반가움에 겨워 버선발로라도 달려 나가고 싶지만 설레이는 가슴을 진득이 누르며 느긋이 참는다. 그러나 그리움의 정이 사무치는 심저(心底)에는 농도 짙은 밀어가 차곡히 쌓인다.
수답지 않고 야하지 않은 침정유로(沈情流露)의 안존한 여인의 모습과 자태에서 한국 여인의 의젓한 아름다움을 본다. 정갈한 신록이 산뜻하게 나래를 펴고 파란 잔디가 곱게 깔린 강기슭 둔덕길을 젊은 한 쌍의 남녀가 정답게 거닐고 있다. 그들은 장래를 약속한 사이이기에 영롱한 내일의 꿈이 오색 찬란한 무지개로 떠오른다.
사나이의 바리톤 목소리가 구비치는 물결을 울리고 지나가면 얌전히 머리숙인 처녀의 가냘픈 목소리가 화답하듯 그 뒤를 따른다. 간간이 사나이와 시선이 마주치면 순간 처녀는 고개를 떨군다. 나는 부끄러워하는 처녀의 수줍은 태도와 나즉한 음성에서 매란(梅蘭)의 청순미(淸純美)를 느끼고 가야금의 은은한 여운을 듣는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직장인이 된 소녀 아닌 소녀가 연하게 화장하고 말쑥한 양장에다 조금은 멋스러운 핸드백을 울러 메고 거리를 사뿐사뿐 걸어가고 있다. 때마침 고등학교 시절의 담임 선생을 만난다. 인사를 해야겠는데 스스로가 차린 모양을 의식했음일까 부끄러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어느새 얼굴은 장밋빛으로 물이 들고 천진스런 귀여움이 보조개로 쪼르르 몰린다. 순간 자기도 모르게 상체가 사르르 꼬인다.
나는 부끄러워 하는 애띤 처녀의 자태에서 티없이 맑은 순진미를 보고 야들한 완곡미를 본다. 그러면 머지 않은 장래에 면사포를 쓰고 스스로 선택한 한 남성을 향하여 조심스럽게 발자국을 옮길 신부의 아리따운 미래상을 그려 보고 싶어진다. 여자의 부끄러움은 아름다움의 원천이며 여자를 보다 더 여자답게 가꾸어주는 영양소가 아닐까 싶다.
그 부끄러움은 어쩌면 까닭없는 부끄러움일지도 모르며 여자이기에 원초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지난날 우리나라의 여성들은 스스로의 모습이나 내심을 스스럼없이 노출하는 것을 천박하고 상스러운 것으로 여겨 왔다. 오히려 여자는 우수 달밤처럼 부끄러움의 베일로 스스로를 조금은 가리우고 별빛같이 찬찬한 예모(禮貌)를 갖추어야 할 것으로 생각해 왔다. 직선적인 노출보다는 후미진 표현에서 은근한 여성의 미를 찾았고 빳빳한 내침(突出)보다는 부드러운 휘어듦(屈曲)에서 여성의 덕을 닦았다. 그래서 한국 여인에겐 그윽한 아름다움의 봉숭아로 피어났고 유심(幽深)한 정덕(貞德)이 들찔레 향기로 뿜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마치 프리즘을 통한 햇빛이 더욱 찬란하고 안개로 자욱한 산 봉우리가 한결 신비로우며 심연을 헤엄치는 고기떼가 한층 멋스러운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그렇듯 은근 하면서도 우아한 한국의 여인상도 시대를 따라 많이 변모되고 있는 것 같다. 여성들의 외양(外樣)으로 풍겨나던 여여(茹茹)로운 부끄러움과 수줍음이 날로 사라져가고 있음을 본다. 어쩐지 전통적인 귀한 보화를 잃어버리는 것도 같아 못내 서운하고 애뜻한 아쉬움을 느낀다. 부끄러워하는 모습과 수줍어하는 자태에서 섬섬(纖纖)히 흘러 내리던 은은한 여성미가 새삼 돋보이고 한결 그리워진다. 회고적(懷古的)인 여성미에 향수를 느끼고 전중(典重)한 부덕(婦德)에 토속의 정을 느끼는 것은 날로 더해가는 과잉 노출이 역겹고 되바라진 자기 표현에 환멸을 느끼는 탓 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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