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깻잎 한 장 차이 같은 표로 정권이 바뀐 뒤 미치고 팔짝 뛸 일 벌어진 게 한둘일까만, 이번엔 역대급이다. 잼버리 파행의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그러는지 애먼 새만금 예산을 그야말로 ‘난도질’했기 때문이다. 8월 29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내년도 정부예산안 중 새만금 관련 예산 부처반영액은 6,626억 원이었으나 기획재정부 심사를 거치면서 1,479억 원으로 대폭 삭감됐다.
삭감률이 무려 78%에 이르는데, 보도를 종합해 자세히 살펴보면 새만금-전주 고속도로 부처반영액은 1,191억 원이었지만, 정부안에는 334억 원만 담겼다. 최근 일부 공사 입찰을 진행한 새만금 국제공항은 580억 원에서 66억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반면 부산 가덕도 신공항은 2024년도에 1,647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었지만 실제 5,363억 원이 반영됐다.
8월 30일 민주당 소속 전북 의원 8명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새만금 지우기가 얼마나 노골적이고 전격적으로 추진된 것인지는 최근 3년 간 예산 현황만 봐도 알 수 있다”고 했다. 최근 3년간 국토교통부 등 각 부처가 기재부에 제출한 요구액과 최종 정부 예산안의 새만금 사업 예산을 비교해보면 2021년 103%, 2022년 139%, 2023년 101% 더 많이 증액되어 반영됐는데, 내년도 예산안에는 고작 22%만 반영된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나서 ‘빅픽쳐’ 운운하더니 화답이라도 하듯 국토교통부가 전라북도 새만금 지역에 추진되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대한 점검에 착수했다. 얼마전 김경안 국민의힘 전북 익산갑 당협위원장이 청장으로 부임한 새만금개발청은 최근 변화된 새만금의 개발 여건을 반영해 2025년까지 새만금 기본계획(MP)을 재수립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지난 대선에서 “새만금을 국제투자진흥지구로 지정하고, 새만금 국제공항을 조기 착공해 공항·항만·철도 등 ‘새만금 트라이포트’를 구축하겠다”던 윤석열 후보는 공약(空約)을 한 것인가?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해 4월 20일 전북을 찾아 “새만금과 전라북도를 기업이 바글거리는, 누구나 와서 마음껏 돈 벌 수 있는 지역으로 만들겠다”고 했는데, 이것 역시허언(虛言)이었나?
윤 대통령은 이날 “2013년 새만금개발청이 설립된 이후 9년 동안 새만금 국가산단 투자 유치 규모가 1조 5,000억 원이었는데 우리 정부가 출범한 후 1년 동안 30개 기업에서 그 4배가 넘는 6조 6,000억 원 투자를 결정했다”고 밝히며 생색을 내기까지 했다. 구멍가게도 아니고 이런 국책사업 예산을 보복이나 화풀이하듯 그렇게 싹둑 잘라도 되는지 묻고 싶다.
중앙일보(2023.7.21.)에 따르면 “새만금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순풍에 돛을 달았다’고 할 정도로 순항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어이가 없고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전북 정치권은 물론 도민들이 잼버리 파행을 지자체에 뒤집어씌우기 위해 새만금 예산을 난도질한 것에 대해 분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전북도의원 14명에 이어 국회의원 6명이 삭발로 저항한 게 단적인 예다.
여권에선 새만금 예산 삭감과 잼버리는 아무 관련없음을 말하고 있지만, 9월 5일 더불어민주당 김윤덕 의원(전주갑)이 국토교통부와 해양수산부 등 관련 부처의 ‘2024년도 성과계획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는 그게 거짓임을 보여준다. 정부가 잼버리 사태 발생 전까지만 해도 새만금 SOC 사업 추진에 매우 적극적인 입장을 취해온 것으로 나타나서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8월 2일 새만금 이차전지 투자협약식에서 ‘사업의 속도감’을 강조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아울러 정부의 새만금 SOC 계획의 골자에는 잼버리로 예산을 빼 먹었다는 일부 여당 의원들의 주장과는 달리 ‘국정과제 수행 및 지역활성화, 국가균형발전’이 그 명분으로 작용했다는 점도 함께 드러났다.
이태원 참사나 오송 지하도 참사처럼 잼버리 파행을 나몰라라 하며 그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주무 장관이나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도 괘씸하고 가관이지만, 아무 관련 없는 새만금을 희생양 삼는 것은 쪼잔한 정권임을 자인하는 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전북도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보다 더 미치고 팔짝 뛸 일이 어디 있을까 싶다.
사실 ‘참 쪼잔한 정권’(전북연합신문, 2016.11.16.)이란 글을 쓴 것은 박근혜 대통령때 일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며 ‘미운 털’이 박히면 대통령답지 않게 여지없이 사적(私的) 보복을 해온 것에 대해 개탄하고 비판한 글이다. 이제 보니 윤석열 정부는 그 쪼잔함이 오히려 그보다 한 수 위다. 보란 듯 대놓고 새만금 예산 칼질을 해대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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