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하다, 훈장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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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다, 훈장 거부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3.02.20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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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어처구니없는 교육부장관 임명’(전북연합신문, 2022.8.4.)이란 글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2016년 2월말 교단을 떠난 이후 전체적 글쓰기는 늘어났는데, 줄어든 분야가 있다. 최근 3년 사이에 펴낸 ‘진짜로 대통령 잘 뽑아야’·‘뭐 저런 검찰총장이 다 있나’ 같은 책을 봐도 금방 알 수 있는 일인데, 바로 교육분야다”라고.
사실은 삼식이가 되고 보니 남아도는 게 시간이다. 이런저런 글쓰기가 이전보다 늘어났지만, 아무래도 교직을 떠난 입장이라 그런지 교육계 문제는 덜 현실적으로 느끼는 모양이다. 그런데 오마이뉴스(2023.1.20.)가 단독이라며 보도한 ‘적반하장 대통령 부끄럽다 … 현직 교장, 훈장 거부’ 제하 기사를 보니 정신이 번쩍 난다.

잠시 기사 내용을 좀 더 살펴보자. 2023년 2월말 퇴직 예정인 충남의 공립중학교 A중 길준용 교장은 윤석열 대통령 이름이 박힌 녹조근정훈장 증서 수령을 거부했다. 길 교장은 “지난해 말 교육부로부터 녹조근정훈장 공적조서를 올리라는 공문을 받았는데, 공적조서 대신 포기이유서를 보냈다”고 밝혔다.
“사사건건 적반하장의 모습을 보이는 대통령의 이름이 적힌 훈장증을 받는 상황이 부끄럽다”는 이유에서다. 길 교장은 이 포기이유서에 “훈장을 주는 사람 이름이 두고두고 부담이 될 것 같다”고 적기도 했다. 녹조근정훈장증엔 ‘대통령 윤석열’이란 수여자 이름 밑에 ‘국무총리 한덕수’,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이란 이름이 병기된다.
길 교장은 “훈장증에 적힐 세 분 모두 하나같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면서 “특히 윤 대통령의 경우 바이든-날리면 사태, 10·29 용산 참사 대응은 물론 최근 ‘UAE 적은 이란’ 발언 사건까지 솔직하게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뭉개면서 이런 태도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공격해서 힘들게 만들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길 교장은 “이런 태도야말로 적반하장인데, 학생들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뿐이 아니다. 오마이뉴스(2023.1.26.)에 따르면 1985년부터 사립과 공립고교에서 국어교사로 38년간 일해 오다 2023년 2월말 정년퇴직을 앞둔 A교사도 훈장을 거부했다. A교사가 교육청에 보낸 훈장포기서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적혀 있다.  
 “말로는 공정과 상식을 내세우면서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정부, 약자와 소외된 이들을 보듬지 못하고 무한 경쟁교육을 추구하는 지금 정부에서 주는 훈장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A교사는 “참교육 교사들은 오히려 징계를 받고 훈장과 포상 명단에서 제외된 현실 속에서, 거기 속하지 않은 내가 떳떳하게 훈장을 받기에는 부끄럽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경기도 소재 B공립중에서는 2023년 2월말 정년퇴직을 앞둔 교사와 교감 2명이 훈장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 중학교 C교감은 “지금 교육상황과 나라 돌아가는 상황에 화도 나고 부끄러워서 훈장을 포기한 것이다. … 교직 말년에 학생인권과 민주시민교육을 위해 남은 힘을 썼는데, 이런 걸 호시탐탐 후퇴시키려는 정부가 주는 훈장을 받는 것은 나 자신한테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모 지역 교육지원청의 교육장도 훈장을 거부한 것으로 밝혀졌다. D교육장은 “교육을 산업인재 공급처로 생각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주는 훈장이란 점도 거부 이유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100년을 내다보는 교육정책이 되어야 하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 시·도교육청 관계자는 “훈장 포기자는 문재인·박근혜 정부 때도 다 있었지만, 현 정부 들어 더 많아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관리자인 교육장·교장·교감의 훈장 거부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내가 몸담았던33년 교직생활에서 들어보지 못한 가히 충격적 사건이라 할만하다. 그만큼 세상이 변했다는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한편 지난해 8월엔 이철기 동국대학교 교수가 훈장을 거부한 일도 있었다. 이데일리(2022.8.29.)에 따르면 이 교수는 “훈포장은 국가의 이름으로 주는 것이긴 하지만, 윤석열의 이름이 들어간 증서를 받는 것은 제 자존심과 양심상 너무 치욕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조선총독에게 무엇을 받는 기분”이라고 말하며 정부 포상 포기 확인서를 공개하기까지 했다.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교직을 떠난 2016년 2월말까진 장기근속 퇴직공무원에게 주는 정부 포상은 4가지다. 재직기간 33년 이상이면 훈장을 수여한다. 훈장은 옥조(33~35년)·녹조(36~37년)·홍조(38~39년)·황조(40년이상)외 1등급인 청조로 세분되어 있다. 30~33년 미만은 포장, 28~30년 미만은 대통령표창, 25~28년 미만은 국무총리표창 등이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닌, 생각하기에 따라 아무것 아닐 수 있는 훈·포장이지만, 국가로부터 “장기간의 재직중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여 국가발전에 기여”했음을 인정받는다는 의미가 있다. 가령 교원문인들이 자신의 프로필에 ‘녹조근정훈장 수훈’ 같은 내용을 넣는 것도 그런 자긍심의 발로가 아닐까 싶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닌 훈장 거부다. 훈장 거부가 대단하다고 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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