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내린 눈은 인류를 오염시키는 산성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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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내린 눈은 인류를 오염시키는 산성 눈
  • 허성배
  • 승인 2017.02.0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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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논설위원

근래에 내리는 겨울 눈은 1950년대 내리던 그때 옛 눈이 아니다. 갈증이 나면 수북이 쌓인 눈을 한 줌 집어 입에 넣고 우물우물 있노라면 스르르 녹아 물이 되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그런가하면 뱃속이 짜릿하면서 전신이 시원했다.
그렇게 갈증을 풀고 아이들은 두 패로 나누어 눈 싸움을  골목을 누비며 쫓고 쫓기면서 눈싸움을 벌렸다. 그러다가 마을 뒷산으로 때로는 들판으로 도망을 가고 그 뒤를 따라 쫓아갔다. 눈 위에서 뒹굴기도 했다.

해가 서산 너머로 숨고 찬바람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면 눈에 젖은 옷은 꽁꽁 얼어 바짓가랑이에는 아기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춤을 췄다. 추위에 떨다. 나뭇가지를 주워 모아 모닥불을 피어놓고 꽁꽁 얼어붙은 손과 발을 녹이고 물에 젖은 바짓가랑이를 말렸다.
바지를 말리다 불이 붙어 바짓가랑이가 시꺼멓게 타기도, 눈썹이 타고 머리를 태워 곱슬머리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마냥 좋았다. 부모님께 꾸지람을 듣는 것은 뒷전이고 그저 즐겁기만 했다. 서로가 서로를 가리키며 놀려됐다. 눈바람이 지나간 뒷날 하늘은 그렇게 맑을 수가 없었다. 청정한 하늘은 답답한 가슴을 확 뚫어 주기도 했다.
그 때 눈은 배꽃같이 하얗고 흰 것만큼 깨끗했다. 물 대신 눈을 먹고도 아무런 탈이 나지 않았었으니 얼마나 좋았던가? 그것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 우리나라는 전형적인 농경 사회였다. 농사는 철저한 유기농이었다. 길바닥에 염화칼슘 같은 것 뿌리지 않았다.
눈이 쌓여 몇 날 며칠이고 꽁꽁 얼어 길바닥이 빙판이 되어도 햇볕에 의해 녹아 없어지기만을 기다렸다. 그 후 산업화를 한 1960년대 후반 공단지역을 중심으로 새까만 매연이 구름처럼 하늘을 뒤덮었다. 공장 주변 사람들의 콧구멍은 연기를 내뿜는 굴뚝이 됐다.
칼칼한 목구멍에서는 거무스레한 가래가 나왔다. 산과 들 나무와 풀잎은 끈적끈적한 매연으로 뒤집어써 누렇게 말라 죽었다. 공기가 오염되고 물이 오염됐다. 그뿐만 아니라 토양 또한 오염 덩어리가 됐다. 비와 눈은 산성으로 변했다.
머리가 헐러 벗겨진 사람을 보고 산성으로 변한 눈과 비를 맞아 대머리가 된 것 아니냐? 묻기도 했다. 그런 시절 오간 데 없이 요즘은 오염된 비와 눈이 내리는 것 보통이다. 어릴 적 눈을 한 줌 입에 넣어 목을 축이는 또 눈싸움하고 눈사람을 만들며 마냥 즐겁기만 했던 그런 눈이 아니다.
이제 눈은 생활에 불편을 끼치는 자연이 내린 것으로, 오염 덩어리로 변해 버렸다. 그런 눈! 그 눈을 하루라도 그보다는 한 시가 바쁘게 제거해야 한다. 제설에 염화칼슘과 소금을 사용한다. 문제는 제설로 사용하는 염화칼슘과 소금이 토양을 오염시킨다.
제설로 토양이 오염되면 농작물과 가로수 등 식물의 생육에 지장을 주는 것은 물론 도로시설이 파손되고 하천 수질은 물론 식수까지 오염시킨다.
이제 눈은 겨울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갈증을 없애고 허기진 배를 채웠던, 눈 위를 뒹굴며 뛰놀았던, 그런 눈이 아닌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키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변해 버렸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칠십 년 전 그렇게 아름답고 포근하고 가슴을 찡하게 뱃속을 시원하게 했던 눈, 그 눈은 오간 데 없이 머리털을 쥐어뜯고 물과 나무를 병들게 하고 흙의 생명마저도 앗아 가 버리는 악마 아닌 병마로 변해 버렸다.
그런 눈은 이제 인간들에게 상처만 준다. 변한 세월만큼 눈도 변해 버렸다. 눈은 눈이지만 옛 눈이 아니다. 자연은 인간들의 무례를 타이르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 뿌린 씨다. 인간이 뿌린 씨를 이제 인류가 거두어 드려야 한다. 산업화 이전 농경시대 그 시절 사뿐이 내렸던 그 눈을 생각하면 어쩐지 그 추억이 자꾸만 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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