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배 / 논설위원
여름 산은 어쩌면 인자하신 아버님의 표상(表象) 같고. 여름의 강물은 잔잔한 어머님의 인자하신 표상 같아. 나는 오늘도 7월의 쨍쨍한 태양 빛을 내려받으면서도 마음의 여백(餘白)인 여름 산이나 여름 강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평화로이 잠자며 침묵하는 산의 표정은 어쩌면 꼭 나만이 아는 비밀을 간직하고 사는 것 같은 산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어느 날 아침 마음을 가다듬고 난 후 산을 한번 바라보면 나는 나의 잘 잘못이 무엇인가를 나를 깨닫게 한다. 이것은 오랜 나의 작업(作業)이다.
산의 미소가 어린 7월의 산길은 싱싱한 내음이 풍겨 더욱 좋다. 고개를 딱 박고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을 보면 흡사 도인(道人) 같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음악이 없어도 좋은 강변에 서서. 산을 바라보는 마음은 도심(道心)을 깨우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하늘과 땅이 처음 열리던. 그 순간처럼 먼 날의 신화를 염원(念願)하면서 “산에 사르렵니다”라고 하던 선인(先人)들의 글귀 절을 외우면서 올여름 한철도 산에 살고 싶은 생각으로 나날을 산을 바라보며 산다.
항상 여름이 오면 산사(山寺)로 여행을 떠나던 나의 생활이 서너 해를 두고 실천하지 못했다. 하는 것 없이 바쁘다는 핑계일지 모른다. 하나 올해만은 꼭 며칠간이나마 산사의 정적(靜寂)에서 살고 싶다. 그래서 여름은 하안거(夏 安居)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산다는 게. 마치 저 산맥(山脈)들과 흡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할 것을 다 못하고 또 할 말을 다 못하고 살고 사니 말이다. 인간은 인간으로 사는 생활을 하면 된다고 떠드는 우인(友人)들을 볼 때마다. 나는 한숨이 나온다.
인간이 인간다운 생활하기가 그렇게 쉬운 것일까? 가장 어려운 게 인간생활이다. 마치 저 산들의 품속에 많은 짐승을 기르고 골짜기를 거닐고 냇물을 뻗치오며 가족처럼 거닐고 사는 산의 생활이나 우리 인간가족들을 거닐고 사는 우리 생활이나 다를 게 무엇인가 하여 나는 오늘도 저 주름살 난 산을 바라보며 내일을 구상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제 우리는 산속을 몰라도 좋고 산을 바라보지 않아도 좋다. 산의 정을 홀로 지니고 살면 된다. 쨍쨍 내리쪼이는 7. 8월 태양은 산속 나무 그늘 따라 잠든 토끼의 머리털을 태우고 있는데 강물은 조용히 지금 몇만 리쯤 흘러가고 있을까.
지심(地心) 만 리길 먼 곳에서 서늘한 냇물은 돌아오고 있을지 모른다.
조용한 밤 별은 창밖에 눈을 떴는데 별은 창가에 눈을 감았다. 나는 하늘땅을 다 잃어버린 아 - 아. 슬픈 순간인데 선심을 귀향(歸鄕)하는 밤이었다. 슬픔도 아픔도. 하소연할 의지처가 없는데 나의 외로운 마음속엔 산정(山頂)만이 다가서고 있었다.
분명 이곳은 고향 마을은 아닌데 창밖엔 낮 선 사람들 목소리가 깊은 골목을 돌아간다. 조용한 아침 해는 창밖에 솟아오르는데 회원(回遠)의 먼 날을 새기며 나는 두 눈 속에 아픔이 흐른다. 그리고 산으로 가는 길이라는 시심(詩心)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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