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배 논설위원
이러한 생활태도의 가장 큰 폐해가 외화내빈(外華內貧)이다. 화려한 겉치레와 빈약한 내용이 그것이다. 우리가 보통 쓰는 말에 의•식•주(衣食住) 라는 게 있다. 사실, 그 순서에 있어 가장 앞서는 중요성에서는 먹는 것, 식(食)이 먼저다.
오늘날의 100만 백수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외화내빈-체면문화가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력이 아닌, 간판이 우선되는 왜곡된 가치관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 못 하면 사람대접을 못 받는 사회가 어떻게 건전한 사회일 수 있는가. 80%에 육박하고 있는 진학률이 수많은 백수를 양산한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 악순환을 끊지 못하고 있는 것은, 국가지배력의 부재도 큰 요인이 될 수 있으며 자식의 진로에 대해 현실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한 학부모들의 책임도 크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이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면, 여기에 더해 인간관계와 주택구매는 물론 개인의 꿈과 희망까지 포기하는 지경이라면 그 인생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가정이 휘청거릴 정도로 교육비(사교육비포함)를 쏟아붓고도 그 결과가 이렇다면 이제는 그 근본에서 이 문제를 다잡아야 하는 절벽에 선 것이다. 그런 위기의식이 절실하다. 이제 작지만 큰 의미를 잉태하고 있는 사례를 살펴보자. 청년취업난이 심해지면서 특성화고등학교의 인기가 상승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취업이 잘 되기 때문이다.
2009년, 특성화고 졸업생의 취업률은 16.7%였다. 그러다 2011년엔 25.9로 늘어났으며 2015년에는 46.6%로 상승했다. 특성화고 중에서 우수학생들이 입학하는 마이스터고는 최근 3년간 그 취업률이 90%를 넘고 있다. 과거에는 인문 계 고교를 떨어진 뒤 가는 곳이던 특성화고이었지만, 이제는 반대로 매년 1만여 명이 특성화고에 응시했다 낙방하고 있다. 이제는 중학교 내신 상위 30% 안에 들어야 합격할 수 있다.
정부도 지금의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학생 비율을 전체고교의 19%에서 2020년까지 3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나의 큰 흐름이 명분에서 실리로 바뀌고 있다.
대학졸업 간판이 밥을 먹여주지 못하는 냉엄한 현실에서 젊은이들이 생각을 바뀌고 있는 것이다. 더 구체적인 최근의 현상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원에 교복 차림으로 앉아 강의를 듣는 고등학생들의 숫자가 늘고 있는 현상이다.
한 학원은, 경찰과 9급 공무원 준비생 중 37명이 고교생인 경우도 있다. 대형학원에 따르면, 고등학교 때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고등학생들의 비율이 2014년과 비교해 1년 만에 5배가 늘었다고 했다. 사람들의 생각이 현실적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개인들의 생각이 큰 흐름이 된다면, 그 합이 곧 교육을 개혁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더 이상의 ‘간판 교육’은 이제 의미가 없다. 7포, 9포 세대만 양산할 뿐이다. 학생도, 그 학부모도, 그리고 사회공동체가 가치관을 바꿀 때가 되었다. 우리는 이미 어떤 의미에서는 강소국이다. 계속 강소국으로 사는 길은 명분보다는 실리를 택하는 것이다. 스위스와 독일이 모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경제의 압축성장과 민주화를 이루어낸 나라다. 그래서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우리도 충분히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열매를 얻으려면 정부의 강력한 개혁 정책은 물론 국민의 의식변화와 함께 뿌리를 바꿔야 한다.
저작권자 © 전북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