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그리고 어떤 묘비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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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그리고 어떤 묘비의 글
  • 허성배
  • 승인 2014.10.1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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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칼럼니스트

해외 출장이나 여행을 가면 무엇보다 먼저 그 나라의 묘지나 무덤부터 둘러본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들렸지만 생각해 볼수록 공감할 수 있을 듯 하다.


우리가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착각해도 실은 모두가 사형선고를 받아놓은 것이나 다름없는 유한의 존재이기 때문에 죽음자체 또는 사후세계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우리의 생을 더욱 생생하게 인식시켜 주는 좋은 시간들이 될 것이다.


미국의 무덤은 봉분이 별로 없고 아르헨티나의 무덤은 서민들의 경우에는 아파트식이 많다고 한다. 벽면마다 층층이 관이 누워 있는 형태로 돼 있는 무덤들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관을 옆으로 눕히는 게 아니라 세워놓는데 그것은 ‘리아드 스톤 (riad stone)’이라는 그 나라 특유의 황토색돌이 땅 속에 많기 때문에 땅을 옆으로 넓게 파지 못하는 데 이유가 있다고 한다.


그래도 시체가 누워있지 않고 서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죽어서도 불편할 것만 같다. 또. 로마 시내에 있는 지하무덤 ‘카다콤베’를 보면 인간의 신념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한 것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새겨보게 된다.


서양인들의 묘지는 주로 우리나라처럼 저 멀리 산에 있는 게 아니라 동네 가운데 혹은 교회당 뜰에 있다. 거기 가지런히 줄 지어 서 있는 묘비에는 앞서 간 이에 대한 추모의 글이나 아쉬움의 인사가 새겨져 있다.


주변을 지나던 한 사람이 묘지를 돌며묘비에 쓰여진 글을 읽다가 어떤 묘 앞에서 발길을 멈추게 됐다. 그 묘비의 글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묘비에 새겨진 글은 단 세 줄이었다. “I was standing in front of a tombstonereading what it saidjust like you are right now.”


“나도 전에는 당신처럼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소.” 순간 터지는 웃음을 참으면서 두번째 줄을 읽었다. “I was also laughing just like you” “나도 생전 한때는 당신처럼 그 곳에서 그렇게 웃고 있었소.”이 글을 읽자 그는 ‘이게 그냥 재미로 쓴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그래서 자세를 가다듬고 긴장된 마음으로 세 번째 줄을 읽었습니다. “Now please prepare yourselffor your death as i did” “이제 당신도 나처럼 죽을 준비를 하시오.” 죽음에 대한 준비만큼 엄숙한 것은 없다.
그런데 그 준비는 지금 살아 있는 동안에 해야 합니다. 그 준비는 바로 ‘오늘’을 결코 장난처럼 살지 않는 것입니다.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글이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서양의 묘지들은 공원의 평온함이 감돌고 으스스한 기분이 별로 없는데. 우리의 공동묘지 들은 왜 한결같이 귀신이 나올 것만 같고 한스러운 기분이 드는가 하는 점이다. 


그네들은 일찍부터 영향을 받아 온 기독교의 내세관 때문에 죽는 것을 그저 이승 쪽에서는 안 보이는 커튼을 들추고 커튼 저쪽의 세계로 갔다고 편안하게 생각해서일까? 우리 경우에는 살아 생전 업보에 따라 미천한 축생으로도 태어날 수 있다는 윤회설(輪廻說)의 불교사상이나 원귀로 떠돌 수도 있다는 민간신앙에 영향을 받는 등 죽음 자체에 대한 개념이 서양과 다르기 때문에 묘지에 공포 분위기가 감도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해본다.


엉뚱하지만 간혹 사람들은 절세 미인의 얼굴에서 갑자기 그 여자의 해골이 됐을 때 모습을 그려보기도 한다. 땅에 묻힌 지 오랜 시간이 지나 풍화작용으로 인해 몸이 다 썩고난 뒤에 남은 저 여인의 해골에서 과연 그녀의 살아 생전 모습이 그토록 미인이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해골도 잘 생긴 해골이 있고 못 생긴 해골이 있을까 하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순간 우스운 느낌이 들다가도 곧 아름다움이나 생명의 덧없음에 허망 해진다.


삶은 죽음의 일부이고 죽음은 또 다른 삶의 시작이다. 여기에는 종교적 의미도 포착될 수 있겠고  종교적 의미가 아니라 그저 자연의 이치로 생각해 보아도 그렇다. 사람이 죽어 썩으면 흙이 되고. 그 흙은 다른 생명체 들을 꽃피워 낸다.


무덤 이야기는 어쩌면 산 자들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현명한 자는 살아있을 때 죽음을 생각하고. 그후의 세계에 대한 마음자세로 가다듬는다. 그곳은 우리 모두 영원히 돌아갈 고향이 아닌가?
“불 속의 어둠. 어둠 속의 불 너의 삶을 깊이 들여다 보겠으면 보아라. 삶 속에 죽음이 있지. 죽음 속을 깊이 들여다 보겠으면 보아라. 죽음 속에 삶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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