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독자투고] 한밤의 행복한 출동
icon 유은주
icon 2014-04-16 03:35:37  |   icon 조회: 1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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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지구대

유은주

lhy5860@hanmail.net

010-7442-3171

[독자투고] 한밤의 행복한 출동

[독자투고] 한밤의 행복한 출동

유흥가를 관할하는 지구대 근무 여자경찰관으로서 이른바, ‘불금’으로 불리는 금요일 야간 근무는 그리 달가운 근무는 아닐 것이다.
정말이지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불타는 금요일 자정 한 통의 신고를 받았다
“길 잃은 할머니가 계세요, 집을 찾아 주세요.”
112순찰차를 타고 우리가 행한 곳은 중화산동에 위치한 한 편의점 야외탁자였다
비틀거리는 취객들 사이에서 우리를 맞이한 이는 편의점 야외탁자에 앉자 허겁지겁 김밥과 우유를 드시는 80세가량의 한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아직 청년이라기엔 이른 20살의 남학생이었다.
그들에게 다가가 신고여부를 묻자 한 할머니가 싸늘한 새벽녘인데도 얇은 옷차림으로 계속 그 주변을 서성이는 것을 이상히 여겨 다가가 물어보니 아침에 집에서 나왔는데 도저히 집을 찾을 수 없어 걷고. 걷고 또 걸었다고 하셨다 한다.
그런 할머니의 집을 찾아드리고파 신고를 했다고 그는 말한다.
과연 할머니는 네온사인이 휘영청 빛나는 유흥가에는 어울리지 않을법한 추레한 차림이었고 봄이라고는 하나 아직 쌀쌀한 밤날씨에 다소 추울법한 얇은 티 한 장이 전부였다
하지만 할머니의 집을 찾아드리고픈 마음씨 착한 앳된 청년의 선행을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고 계속 걷기만 했다는 할머니에게 시간제알바의 한 시간 알바 비를 선뜻 들여 김밥과 우유를 사드린 것이다
경찰관의 칭찬에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나서요” 라고 수줍게 말끝을 흐리는 아직 솜털이 뽀얀 앳된 청년의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에 그 시간까지 주취 자에게 시달렸던 피곤함과 노곤함이 눈 녹듯 한방에 사라진다.
‘세상은 아직 살아갈만해’란 누군가의 말이 번뜩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힘들고 내일이 불확실한 각박한 삶이 현시대의 우리네 삶이지만 이런 따스함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비단 그 청년 하나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또는 괜히 착한 척 하는 것으로 보일까봐 또는 괜히 남 일에 끼기 싫어서란 보편적 이유가 있을 터
이럴 때, 이럴 때가 경찰관이 시민에게 필요한 순간이다
꼭 범죄의 피해자나 자신의 시시비비를 위해서 경찰관이 필요한 것이 아닌 자신이 생각하는 선행과 정의를 실현하기에 뭔가 어려움이 있을 때, 공권력과 정보력을 가진 경찰의 도움을
빌어 함께 지역 치안을 이끌어 가는 것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역사회 민생치안 안전과 범죄예방에 크나 큰 기여가 된다는 것을 아직은 소극적 마음에 참여하지 못하시는 분들께 다시 한 번 알려드리고 싶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경찰!
바로 여러분 곁에 있습니다...라고

다시금 불타는 금요일의 유흥가
넘실대는 취객들 사이에 네잎 클로버처럼 꼭꼭 숨어있는 그런 희망이라는 이름의 청년을 만나보는 행운을 누리기를,
나는 오늘도 기대해본다.
전주완산경찰서/화산지구대 경장 유은주

2014-04-16 03:3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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