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사회의 모순>
블랙리스트 사건이 떠오른 지도 거의 1년이 돼간다. 문화의 자유를 지향해야 할 정부가, 반정부적인 성향을 띠고 있는 문화인들을 억압했다. 이는 법치국가에서, 정의를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정부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순은 특별히 정치에서만 부각되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일상생활에서도 이 ‘모순’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느 여름날 밤이었다. 그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날이기도 했다. 매일 가는 독서실 횡단보도였다. 그는 그저 길에서 만난, 무심코 지나치는 사람들 중 한명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무심코 지나칠 수 없었다. 그는 정말 ‘모순 덩어리’ 그 자체였고 내게는 하나의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40대가 채 안되어 보이는 청년으로 보였다. 꽤 새것처럼 보이는, 새까만 양복을 입었다. 손목엔 도심의 불빛 가운데에서도 충분히 빛이 나는 은색 시계를 차고 있었다. 머리는 왁스로 올려 한껏 멋을 내었다. 발에는 아버지가 출근할 때 신으시던 엄숙하고 무거운 느낌의 검은 구두가 신겨져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오른손에 잡혀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들고 다니시던 각진 회사가방이 아닌, ‘수레’였다. 사실 몇 초 동안 ‘이 근처에 있는 대형 가전제품 사에 근무하시는 분이 물건을 나르러 오셨나 보다’ 생각하였다. 그러나, 필자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는 수레에 폐지를 담고 있었다. 한걸음 한걸음 걸어갈 때마다 불만 섞인 알 수 없는 말들을 허공을 쳐다보며 내뱉었다. 그러곤 수레를 ‘쿵’ 하고 놓으며 폐지를 모았다. 몇 미터 가고 또 폐지를 줍고, 하늘을 보고 알 수 없는 말들을 내뱉길 반복했다. 무엇이 수레 아저씨를 모순적으로 만든 것일까?
우리 사회를 떠올려보자. ‘빈부격차’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불공정성’, ‘소통 부재’, ‘물질만능주의’ . 보기만해도 마음이 텁텁해지는 단어들이 우리 사회를 꽉 메우고 있다. 필자는 이것들이 수레아저씨의 모순적인 행색을 만들었다고 느꼈다. 그냥 지나가는 이상한 아저씨 한 명으로 치부해버릴 수 없다는 소리다.
잠시 동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우리가 사회의 모순에 너무 익숙해져 은연중에 모순을 부추기는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