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영원히 살아 숨 쉬는 것<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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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영원히 살아 숨 쉬는 것<2>
  • 허성배 칼럼니스트
  • 승인 2013.08.2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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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수년 전에 해외여행 중 잠깐 들렸던 이탈리아의 사도(四都) 폼페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벼운 흥분이 가시지 않는다. 사치와 향락, 그리고 퇴폐의 극치로 상징되던 도시 폼페이, 신의 형벌로 하루아침에 폐허가 되어버린 부끄러운 역사의 현장이었지만, 그들의 후손들은 결코 그 자랑스러울 것이 없는 조상들의 치부를 조금도 가리거나 덮어버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금까지도 그 치부의 현장을 하나하나 파헤쳐 자신들의 교훈으로 기리고 있다. 비록 무너지다 남은 담장이지만 길모퉁이의 모습까지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그 담장 안의 깊숙한 방에 그려진 춘화 도의 실상과 음행의 현장까지도 생생하게 보존하고 있다. 말쑥해진 서울 거리에 다방 골의 일각 대문 하나라도 남아 있거나 6.25남침 전쟁 때 잔인하게 일그러진 건물의 잔해 하나 만이라도 그대로 보존되었다면 흔들리는 가치관 병든 이데올로기로 방향 감각마져 잃고 좌왕?우왕 하는 좌파 종북 세력들과 젊은이들이 봐야 하는 안타까움은 좀 덜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독일의 옛 성 하이델베르크는 그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이 전쟁이라는 가공할 죄 때문에 얼마나 흉한 상처를 받았는가를 지금껏 그대로 증언하고 있다. 창공을 캔버스 삼아 그린 그로 데스크란 벽체의 미완성 작품 같이 깨어진 창문들이 지금도 하늘을 향해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뿜고 있다.

  또한. 뉴욕의 상징인 자유여인 상 발밑에 자리한 미인 박물관의 노예무역선 모형도 가슴을 찡하게 한다. 굴비두름 처럼 엮어진 채 몸통에 짓눌리는 흑인 노예의 처참한 모습들이 보는 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비록 흑인과의 인종적 갈등을 오늘도 안고 사는 그들이지만 선은 선, 악은 악이라는 인간적인 솔직성과 참회의 마음은 살아 숨 쉬고 있다. 노예선의 수치를 그들은 조금도 숨기지 않고 양심대로 역사대로 역사 앞에 조각해 놓고 매일같이 바라다본다. 잠시 지나친 필자의 감상으로 얼마나 깊이 볼 수 있을까 만은 지난 여행길에 들른 마닐라의 말라카냥 궁의 모습 또한 내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필리핀의 대통령관저인 이 궁은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실각 후
이멜다의 수백 켤레의 구두와 더불어 사치의 극치를 이루었던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영조나 연산군의 치부를 실오라기 하나 가리거나 덮지 않고 그대로 기록한 우리 사관의 뜻이 연상되어 새삼 충격적이었다.
 당시 새 대통령이 된 코라손 아키노는 집무실과 관저를 궁 건너편에다가 조촐하게 마련해 놓고 국무회의나 국빈접대 등 공식행사만을 제외한 시간에 그 역사의 현장을 만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옛 왕조로부터 스페인의 4백여 년 통치를 거쳐오면서 영욕을 함께한 궁은 필리핀 고유의 나뭇조각들로 장식 축조되어 하나의 커다란 민속 박물관 같았다. 그 구석구석 마다 오랫 동안 독재와 사치를 만끽한 여인의 체취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또한. 거기에는 혁명군의 진압 도가 그려진 칠판과 더불어 독재자의 숨이 가뿐 몰락의 현장이 생생하게 보존되어 있었고 아키노의 암살현장까지도 모형으로 재현되어 있었다. 비록 주인 잃은 물건들과 사진들이지만 광기 어린 한 여인의 오만과 독선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연신 벗겨지고 서 있었다.
  4. 19 때 끌어내린 살아 있는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이나 분노에 찬 시민들이 짓밟아 없애버린 이기붕의 저택과 축재의 실물들이 말라카냥 궁처럼 지금도 제자리에 놓여 있기만 하다면 그들의 참. 모습을 어렵지 않게 심판대에 올려놓고 독재의 결말을 실감할 터인데…우리는 너무 성급했다. 너무 성급하게 단죄하고 너무 성급하게 역사의 현장을 없애버리는 졸속 주의자가 돼 버렸다.
 지금 우리나라는 국가 최고정보기관인 국가정보윈을 무력화 시키기 위한 책동과 역사의 혼인 사초 (史草)를 증발(蒸發)한 관련자들을 헌법에따라 전원 색출하여 반 국가 이적죄로 엄중 척결 해야 할 것이다.
  잊히고 덮어진 치부는 일체의 망각이지 삼인행에 필유아사언(必有我師焉)의 스승은 될 수가 없다. 오늘도 훌륭한 스승들을 낙엽처럼 쓸고 묻으면서 망각 속에 사는 것은 아닌지 다 같이 반성하고 생각해 볼일이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그리고 우리 들의 사랑도 흐르네. 밤도 오고 종도 울려라 세월은 흘러가나, 나는 여기 머물겠네.
  G.아폴리네르의 시(詩)다. 필자의 나름의 해석일지는 모르나 세월이 흐르고 사랑은 가도 나는 여기 머물겠네의 의지야 말로 가장 솔직하게 살아가는 한 인간의 역사 의식이 아닌가 싶다. 미라보 다리가 존재함으로만이 그 시인은 과거도 미래도 늘 현재와 같이 살아 숨 쉬는 듯 노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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