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죽어서도 자녀를 걱정하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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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죽어서도 자녀를 걱정하는 존재다
  • 최효찬 칼럼니스트
  • 승인 2013.08.18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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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보면 평생 영업사원으로 일하다가 나이가 들어 해고당한 아버지 윌리 로만은 2만 3,000달러의 보험금을 타기 위해 교통사고로 죽기로 작정한다. 계획은 실행된다. 아버지는 죽고, 남은 가족에게 보험금이 지급된다. 아버지가 져야 하는 가족에 대한 책임과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우선 아들 희원이가 가장 마음에 걸렸다. 오늘 아침 조금 늦게 출근을 하면서까지 사무실 근처 보험 회사에서 챙겨 온 팸플릿과 상품 설명서, 약관 따위를 샅샅이 훑었다. 아무리 자신이 죽고 난 뒤라 해도 아들이 경제사정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로 인해 공부에 지장이 생긴다면 그건 정말 눈감아도 못 봐 줄 노릇이었다. 우선 두 개의 보험 중 하나인 사망보상금과 적금을 아들 명의로 하여 교육보험에들도록 할 생각이었다."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는 췌장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아버지 정수의 이야기다. 가족에 헌신적이었지만 아내뿐만 아니라 자녀에게도 따돌림을 당하는 아버지는 쓰러져 가는 순간까지도 남편 없이 살아갈 아내와 아빠 없이 지낼 아이들을 걱정한다.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자신이 죽은 후 생계를 책임질 아내를 걱정한다. 아버지는 죽어서도 아내와 자녀를 걱정한다.
반면 레프 톨스토이가 쓴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주인공의 죽음은 인생의 공허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주인공인 고등법원 판사는 어느 날 옆구리에 통증을 느끼고 결국 죽어간다. 그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자신의 이익을 희생해왔는데 이제야 그들은 자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죽음을 앞두고서야 깨닫는다. 주위 사람들이 사랑한 것은 그의 지위였고 부유한 아버지이자 가장이엇기 때문에 존경받았던 것이다. 죽음이 임박해서도 아무도 그에게 동정을 주지 않았다는 점이 그는 가장 괴로웠다. 그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직장동료들은 단지 자기가 아니라 그가 죽은데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아내조차 자신이 받을 연금 규모가 줄어들까봐 걱정이고 딸은 아버지 장례식 때문에 결혼계획이 엉망이 될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여기서 톨스토이는 아버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이반은 죽음 직전에서야 지상에서 얻은 시간을 낭비했고 겉으로는 품위가 있지만 속으로는 황폐한 삶을 살았음을 인식한다. 자신의 성장, 교육, 일을 돌이켜보며 다른 사람들 눈에 중요해보이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그 모든 일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주위 사람들이 사랑한 것은 그의 지위인 판사였고 심지어 가족들에게서조차 부유한 아버지였기 때문에 존경받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가족은 도구적인 존재로 아버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한번은 '개인파산자'로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친구의 카톡을 보게 되었다. 두 딸을 둔 그는 딸들이 어릴 때 사진과 지금 사진을 올려놓고 이런 문구를 썼다. "전에는 '깜찍이', 지금은 '끔찍이'." 필자는 이 글을 보고 왠지 모를 듯한 통증에 감전된 기분이었다. 마치 오노레 드고리온 발 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에서 두 딸을 둔 아버지가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제면업자로 성공한 고리오는 프랑스판 '딸 바보'였다. 고리오는 매년 6만 프랑 이상을 벌어들이는 부자였지만 자신을 위해서 1,200프랑 이상을 쓰는 법이 없었다. 그의 행복인 아나스타지와 델핀 두 딸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돈을 썼다. 두 딸은 승마를 배웠고 고급 마차(지금의 승용차)를 타고 다녔다. 두 딸이 원한다면 고리오는 얼마를 지불해서든 딸들의 욕망을 채워주었다. 그 대가로 딸들이 아버지를 한 번 껴안아주면 충분했다. 고리오는 애지중지하며 키운 두 딸을 거액의 지참금과 함께 구족과 자산가에게 시집을 보냈다. 이후 딸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고 나자 아버지를 내쫓았고 쓸쓸하게 죽어 가는데도 딸들은 아버지를 찾지도 않는다. 딸에게 잘해주는 것만이 사랑으로 알았던 딸 바보 아버지의 비극적 최후다. 소설에서처럼 철없는 자녀들 둔 아버지일지라도 아버지는 죽어서도 자녀를 걱정하는 그런 존재다. 그러나 소설에서처럼 이런 아버지로 생을 마감한다면 그야말로 끔찍한 죽음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로 살아보면 알 테지만 아버지로 산다는 것은 참 어려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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