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한옥맨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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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맨더링
  • 조병현 논설위원
  • 승인 2013.07.2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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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181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게리(Elbridge Gerry)주지사가 상원선거법 개정법의 강행을 위해 자기당인 공화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분할했는데, 그 모양이 샐러맨더(salamander:도롱뇽)와 같다고 해 반대당에서 샐러 대신에 게리의 이름을 붙여 야유하고 비난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네이버) 이 말은 지금도 정치권에서 선거와 관련해서 부당한 선거구 획정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데 경구가 되고 있다.
 개인의 욕심과 정확한 개념부재로 인해 국민들이 겪게 되는 혼란은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다. 실례로 천연화장품의 경우가 또 그렇다. 보통소비자들은 생각할 때 ‘천연’이라고 하면 인공의 것이 전혀 포함되지 않은 순수 자연그대로의 그것쯤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해다. 화장품에 천연재료가 단 1%만 들어가 있어도 천연화장품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고 한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임에 틀림없다.

 위 두 경우에서 본 것처럼 본디를 알고 그것에 개념을 부여함으로써 그 정체성을 확립하고 지켜나가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임을 알 수 있고 그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소인들이 부리는 욕심으로 인해 변질되거나 변형되는 안타까운 일들이 생기지 않도록 사전에 막아주는 방패로서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갓 쓰고 양복 입은 전주한옥마을
 우리나라는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됐고 이와 함께 주택의 구조도 많은 변화를 낳았다. 특히 1970년대 일었던 새마을운동은 도시는 물론 시골마을의 주택도 한국적인 것에서 떠나 삶의 편리성이 강조되는 쪽으로 개량됐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다행스럽게도 전통의 모습을 지켜낸 곳이 있으니 바로, 서울, 아산, 안동, 전주 등 많은 곳에 있는 한옥마을이 그렇다. 그런데 이들 각 마을은 서로 닮은듯하면서 또 다른 모습을 갖고 있다.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삶의 터로서의 기능을 하면서도 변화의 폭을 최소화시켜 한국적인 전통의 모습을 잃지 않고 지켜나가는 곳과 변화를 지나치게 수용함으로써 본디 한옥마을이라는 이름의 정체성까지 의심받는 지경에 이른 곳도 있다. 전주한옥마을이 그런 곳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전주한옥마을에 여러 번 가봤다. 고풍스런 기와집, 돌담, 길옆으로 흐르는 도랑 물소리는  순간 맘을 편케 한다. 그러나 잠시 가졌던 편함은 거기까지다. 조금만 더 안으로 들어가 보면 이곳은 마을의 모습이라기 보단 상업지역이구나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한두 집 건너 있는 가게, 여기저기 보이는 외국음식의 유명 체인점, 한지보단 통유리에 비치는 일상, 즐비한 커피숍, 중국과 남미 등에서 생산된 기념품, 정말 너무했다 싶을 만큼이나 많은 상업시설들, 밤이면 더 밝게 빛을 내는 휘황한 간판들, 골목마다 내달리듯 달리는 자동차와 그 소음 때문이다. 한해면 수백만 명이 방문한다는 전주한옥마을에서 그들은 과연 무엇을 보았을까, 과연 한국전통가옥을 만났을까, 다시 오고 싶은 곳이라는 생각은 할까, 여느 다른 한옥마을과 비교해서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통과 문화가 숨 쉬는 곳이라는 광고 문구에 걸맞는 곳이라고 여기고는 있을까? 아니, 그들의 여김보다 먼저 우리 스스로 한옥마을이라는 본디 이름에 맞는 정체성을 가졌다고 자부할 수는 있을까?
 옛말에 ‘갓 쓰고 양복 입는다’는 표현이 있다. 어울리지 않은 차림이나 행동을 가리켜 비유로서 깨달음을 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상상에서 온 게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것 같다. 일본 나고야(名古屋)의 어느 양복점은 1934년 12월 11일자 조선일보에다가 광고를 냈다. 그 광고의 내용을 보면 한 손에 장죽(長竹)을 든 아저씨가 갓 쓰고 양복 코트를 입고 있는 모습이다.(김명환. 모던 광고 파노라마) 지금 봐도 모양이 우스꽝스러운데 당시엔 얼마나 더했을까?  
 전주한옥마을을 보면서 문득 그 광고에서 봤던 모델의 어색한 모습이 생각나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게리 주지사는 욕심에 이끌려 게리맨더링, 전주한옥마을은 상업화라는 욕심에 이끌려 본디와 정체성을 잃고 ‘한옥맨더링’이 되고 있다. 1%만으로 천연화장품이 된다고 해서 1%만으로 한옥마을이 될 수는 없다.
 

/조병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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