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의 의미를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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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의 의미를 알자
  • 이호재 고문
  • 승인 2011.10.06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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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올해가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 즉 '백성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이름의 우리 글자 '한글'을 세상에 펴낸 지 565돌이다."한글날"은 훈민정음의 반포를 기념하는 날이다한글은 1443년 조선 제4대 임금 세종이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창제한 것에서 비롯한다.

한글 창제 당시에는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으로 '훈민정음'이라 하였고, 줄여서 '정음'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지식층으로부터 경시되며, 막연히 '언문(諺文)', '언서(諺書)', '반절(反切)'로 불리거나 혹은 '암글'(여성들이 배우는 글) '아햇글'(어린이들이 배우는 글)이라고 낮추어 불리다가, 1894년 갑오개혁에서 국서(國書), 국문(國文)이라고 불렀고 '조선글'로 부르기도하였는데 이것은 한국의 글이라는 보통 이름일 뿐이며, '한글'이라는 이름이 널리 쓰이기 전에는 '가갸글'이라 불렀다.'한글'이라는 이름은 큰 글 가운데 오직 하나뿐인 좋은 글, 온 겨레가 한결같이 써온 글, 글 가운데 바른 글(똑 바른 가운데를 '한'가운데라 하듯이), 모난 데 없이 둥근 글(입 크기에 알맞게 찬 것을 한 입이라 하듯이)이란 여러 뜻을 한 데 모은 것이라 하기도 한다.우리는 한글의 고마움을 잊지말고 마음속 깊이 간직해야 할것이다. 한글날은 우리 겨레의 큰 잔칫날이다.
이에 즈음하여, 한글의 우수성을 되새기면서 한글날의 참된 의미를 찾아보자.

글자란 소리말이 지닌 시간적·공간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마련된 시각적 기호 체계를 가리키며, 소리말을 글자로 옮긴 것이 글 또는 글말이다. 세상에는 겨레의 가짓수에 버금가는 7천100여 가지 소리말이 있으며, 400여 가지의 글자가 있다.

소리말과 달리 글자는 가치 우열을 갖는데, 그 기준은 소리말을 적고 읽어내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로 정확하고 편리한가에 달려 있다. 일찍이 세종대왕께서는 글자 없이 살아가는 이 땅의 백성을 어여삐 여겨 생각 또는 소리말을 적고 읽기에 가장 빼어난 한글을 만드신 것이다.

한글의 이러한 우수성은 오늘날에 이르러서 더욱 실증적으로 그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컴퓨터에서 한글은 입력이나 출력이 정확하고 쉽고 속도가 빠르며 글꼴이 다채로워 글자 생활의 혁명을 가져오게 되었으며, 특히 글자의 입력이 간단해 손 전화에서 글말 전송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한글날에는 한글의 우수성을 생각하며, 한글 사용에 대한 굳센 믿음을 다짐해야 할 것이다. 지난날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를 가졌으면서도 한글의 보배로움을 모른 채 남의 글자에 넋을 빼앗겨 왔다. 실제로 그러한 일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 주변에서는 한글의 과학성과 위대성을 외치면서도 한글만으로 글자살이를 하는 데 대한 부끄러움과 한글만으로 글자살이를 하기에 부족하다고 주저하는 사례를 자주 만나게 된다.


한글로 글자살이를 하는 데 부끄러운 마음은 무릇 글이란 품위가 있고 고상해야 한다는 그릇된 생각에서 비롯된다. 편짓글이나 알림 글, 수필 및 저술에 이르기까지 한자나 로마자를 섞어 써야 그럴 듯해 보인다고 믿는다.

이 과정에서 틀린 글자를 쓰기 십상이며, 힘들여 사전이나 옥편을 찾거나 남의 손을 빌리는 수도 있다. 이와 같이 뽐내려는 의도로 치장된 섞어 쓰기는 읽는 이에게 큰 부담을 주게 된다.

읽는 이 쪽에서는 글자의 제약 때문에 글의 내용에 다가가기 어렵기도 하며, 글쓴이의 허세에 휘둘려 글 밖의 분위기에 위압되거나 글쓴이의 학식을 맹목적으로 우러러 보는 버릇까지 생기게 된다.

한글로 글자살이를 하기에 부족하다는 지식인이나 학자들의 주장은 더 큰 병폐를 낳게 된다. 이 주장의 근거는 우리말 속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한자어 및 외래어의 충실한 이해를 위해서는 원어 표기가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토박이말 ‘소젖’의 외래어인 ‘우유’나 ‘밀크’에 대해서 그 뜻의 빠르고도 정확한 이해를 위해 ‘牛乳’ 및 ‘milk’로 적는 것이 지극히 효율적이고도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소리말에서 ‘우유’나 ‘밀크’는 아무 어려움 없이 그 의미가 전달되는데, 글자로 옮길 때 굳이 원어 표기를 해야 한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다. 한걸음 더 나아가 낯설고 어려운 외래어를 토박이말로 바꾸고 우리 정서에 어울리는 새말을 만들어 쓰는 보다 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요컨대 말과 글을 쉽고 조리 있고 아름답게 가꾸는 겨레 치고 자신을 부끄럽게 여긴다거나 맹목적으로 남의 문화에 이끌리는 일은 드물다. 그것은 말과 글이 갖는 놀라운 힘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무엇보다도 소리말과 글말을 바르게 사용하는 데 글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마땅히 우리 겨레 모두가 한글의 참된 가치를 깨달아 한글로 글자살이의 홀로서기를 하게 될 때 겨레의 정서는 한결 맑고 부드러워지며, 겨레의 기상은 나날이 굳세고 떳떳하게 될 것이다. 기성세대들의 입맞에 맞는 한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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