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의 정과 대란 대치
상태바
세모의 정과 대란 대치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2.12.27 14: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허성배 주필

 

급변하는 세태의 소용돌이 속에서 다사다난했던 임인년(任寅年)도 이제 며칠 남지 않은 듯 세모(歲暮)의 기분이 차츰 스며가는 것 같다.
매서운 한파가 휘몰아치더니 이제는 동장군(冬將軍)의 맹위에 짓눌려 두툼한 외투 깃에 고개가 움츠려지고 세모의 기분이 차츰 번지고 있다. 

우리가 지금 세모의 정에 젖어 훈훈한 인정을 베풀라치면 그 상대가 너무도 많음을 쉬 알 수 있다. 뜻하지 않은 재난으로 인하여 하루아침에 벌거숭이가 되다시피 한 이재민이 있는가 하면 수년을 두고 병상에서 신음하고 이름 모르는 외로운 환자들도 있고 쓸쓸하게 지내는 양로원의 노인들이나 보육원에서 부모의 정을 모른 채 떨고 있는 사고무친(四顧無親)의 가엾은 아이들은 말할갓도 없고 날마다 호구지책에 급급 하는 저소득층의 영세민 등…. 우리가 정겨운 입김을 불어 넣어 주어야 할 상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물론 따스한 마음의 손길을 펼 수 있는 몇 사람의 가냘픈 온정만으로는 이들을 만족스럽고 따뜻하게 돌보아 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조그만 정성일 망정 이럴 때 자랑스럽게 펼 수만 있다면 불행한 이웃과 불우한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하여 삶에 대해 용기와 희망을 안겨다 줄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아직도 예나 다름없이 세모(歲暮)가 가까워지면 불우한 이웃과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돌보려는 자선냄비의 갸냘픈 소리와 함께 인정 있는 마음과는 아랑곳없이 연간 수조 원에서 수십조 원의 귀중한 달러를 해외호화 관광여행 낭비 일변도로 펑펑 써대는 행동을 일삼는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주위에 많이 있음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경건한 마음으로 지난 1년을 되돌아봐야 할 세모를 송년 주에 만취되어 주당(酒黨) 대회를 방불케 하는 취흥 난동과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면 건실한 생활인으로서 자세가 갖추어지지 않은 탓일 것이다. 지금 우리 앞에는 제야(除夜)의 종이 울려 퍼지는 그 순간까지 숨 가쁘게 뛰어야 할 수많은 일이 정부는 물론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산적해 있다. 세모가 가까워졌다 해도 괜히 들뜬 기분에 휘말려 일손을 멈추고 허망한 기분에 들떠 우왕좌왕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국가적 위기나 역사적 전환기를 어떻게 포착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아일랜드처럼 국가적 재정위기를 경제 선진화 기회로 전환하면 도약하지만, 베네수엘라나 브라질처럼 국가 위기 앞에서도 포퓰리즘에 집착하면 몰락(한국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세계 3위로 경제위기라는 IMF, OECD의 경고)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은 북핵을 비롯한 경제문제 특히 국론분열 등 전대미문의 정치 공간을 역사 발전의 동력으로 삼을 방법을 놓고 국민 모두는 화대연소습시(火大燃燒濕柴)라는 진리를 깊이 헤아려야 할 때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달성한 국가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한국의 정치 상황 분석 기사에서 “한국은 대략 20년 주기로 엄습한 위기를 국가적 발전 기회로 전환하며 대란 대치(大亂 大治)를 누가 할 것인가에 대하여 위기 대응 능력을 키워온 나라”라고 평가했다. 미국·한국의 금리 인상과 함께 세계적인 경기 불황이나 긴박한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안보적 현실까지 들추지 않더라도 오늘 우리에게 요구되는 일은 각자의 분수에 맞는 생활과 근면한 생활 태도이다. 
올 한해는 유난히 변화무쌍 한 해로서 스산한 세모이기도 하지만 경건한 마음으로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미완된 일들을 말끔히 정리해서 지난 1년의 뼈아픈 상처와 경험을 값진 교훈으로 삼아 송구영신(送舊迎新)하는 희망찬 새해(癸卯年)를 맞을 수 있게 준비하고 불우한 이웃에 세모의 정을 흠뻑 나누어 주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 봄이 어떨지….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