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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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나무처럼
  • 허성배
  • 승인 2022.09.19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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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밤비 내리는 소리에 목이 마르다. 찬비를 맞으면서도 갈증이 더해지는 늦가을 수풀과 나무처럼 목이 마르다.
아마도 지금쯤 천지의 모든 초목은 그 발 아래 더운 피를 쏟아내 듯 붉은 잎새를 떨구고 섰으리라. 낭자히 붉은 선혈처럼 낙옆은 흥건히 젖어 누우리라.

참회의 기도이듯 차가운 가을 밤비를 맨몸으로 맞으면서. 가장 처절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으리라.
환희의 기도이듯 아름다운 지난 봄철 울긋 불긋 어지러히 꽃피던 어리석은 목숨들의 화려한 꿈이며. 그 꿈이 가져온 허망스런 종말의 이시간. 아픈 뉘우침과 눈물의 기도밖에는 할수 없는 무엇이 또 있단 말인가.
구름 잡듯 헛된 허상(虛像)을 두고 열정을 바쳤던 유난히 뜨거웠던 지난 여름동안 비린내 엉기던 가슴 가슴마다 무성히 우거진 허세나 교만도 속절없는 가랑 잎으로 돌아가 누울 수 밖에는!
짧은 인생을 만 년이나 살 것처럼 결단코 나만은 죽지않고 영생(永生)할 목숨처럼. 황홀히 부풀렸던 일만 가지 꿈. 명예와 사랑과 그리고 돈… 이 모든 것이 이 밤 가을비에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는 낙옆의 그것과 무엇이 다르랴?
며칠 못 살고 죽는 하루살이가 있는가 하면 모하비 사막의 떡갈나무 덤불처럼 1만년 이상 사는 생물도 있다. 일본의 유명한 여류소설가 소노아야코씨의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아름답게 늙고 싶다”라는 계노록(戒老錄)처럼 만추의 10월 낭만의 아름다운 계절에 황금빛 은행잎이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듯!
빗소리는 더욱 높아지는데. 소리죽여 흐느끼는 여인의 안타까운 기도처럼. 참회의 강에 몸을 던져 우는 가장 정직한 기도의 물결 소리처럼 밤비 소리는 한결 더해진다.
저 미물인 가을 초목도 다스리는 창조주의 섭리 앞에 어찌 벼개 돋우어 무딘 잠을 잘것인가. 일어나 가을 수목처럼 온몸을 적셔 울리라. 최후의 기도처럼 가장 처절한 흐느낌으로 기도 하리라.
버릴 것 다 버리고 잃을 것 다 잃으면서 인간이 추구할 삶의 표본을 보여준 이가 예수여.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여. 그대가 몸소 가르친 삶의 길이 봄 날 황홀한 꽃과 같은 단꿈이 아니었고. 더구나 여름날 무성한 질푸른 녹음과 같은 탐욕은 아니였음을 새삼 알것같다.
가슴 죄여 안타까웠던 사람의 일과 경영. 그리고 사람의 가슴에 꿈틀거리던 짐승의 마음은 더욱 아니였음을 이밤 다시 알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박복하고 험악한 운명으로 살다가신 예수여.
오늘 내 모습이 가을 초목처럼 가진 것 없이 박복하더라도 오히려 기쁜 눈물로 울기를 바란다. 내 살아온 길과 또 살아갈 길이 비록 험악하더라도 나의 불운(不運)을 눈물의 기로 조용히 삭여낼 수 있기를 또한 바란다.
이 밤 내 손을 이끌어 허허 빈들에 세워 두소서. 발가벗은 한 그루 가을나무의 용기와 겸허로 밤새도록 내리는 밤비처럼 처절한 기도로 울 수 있게 하소서. 삼동(三冬)의 된서리 눈바람의 형벌로 단근질하며 죽지 않는 혼으로 다스려 주소서.
참된 기쁨은 언제나 크낙한 슬픔과 더불어 오는 진리를 나 이제 조금은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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