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자본주의와 유일한 생존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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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자본주의와 유일한 생존전략
  • 허성배
  • 승인 2022.07.2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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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흔히들 자본주의는 이기심을 부추겨 비윤리적 행동을 조장한다고 한다.
도덕경제학자 새뮤얼 볼스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는 “자본주의 역사가 오래된 사회들이 협조적이고 관대한 사회규범에 순응하면서 활기 넘치는 시민 문화를 유지해왔다”고 말한다. 그 증거로 볼스는 뉴욕시에 주재하는 146개국 외교관들의 5년간 주차 위반 건수를 제시한다. 이집트가 1인당 140건으로 가장 많았다. 반면 영국은 0건, 독일은 1인당 1건이었다. 자본주의 역사가 오래된 사회일수록 더 윤리적이라고 할 만했다.

왜 이런 결과 나온 것일까. 볼스는 ‘법치’를 이유로 꼽았다. 자본주의 사회는 재화와 서비스 배분을 시장이 맡지만 법에 따라 한다. 그 법은 시민의 재산권과 정치·사회적 권리를 보장한다. 그렇기에 자본주의 사회는 서로를 신뢰할 수 있다. 법이 신뢰를 만들고, 신뢰에 기반해 시장이 작동한다. 덕분에 다른 체제보다 윤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에서 정반대 성격의 자본주의가 부상했다. 경제학자 브랑코 밀라노비치가 ‘정치 자본주의’라고 규정한 체제다. 생산과 고용을 민간이 책임진다는 점에서 자본주의다. 그러나 법치는 배제된다. 정치권력이 자의적으로 민간 기업을 통제한다. 이런 자의적 통치는 신뢰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미 겪었다. 사드를 배치한 이후 중국에 경제 보복을 당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보복 사실을 부인한다. 그들을 믿어도 될까.
자유주의 자본주의자들은 한때 중국과 러시아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는 중국의 세계무역기구 가입을 지원했다. 중국이 자본주의 체제로 탈바꿈하면 한국이 그랬듯이, 자유주의 체제로 변모할 수 있을 걸로 믿었다. 독일은 러시아와 경제 협력을 강화하면 러시아의 유럽 의존도가 높아져, 유럽 평화를 해치지 않을 걸로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강화한다. 이들 나라에서 자본주의는 발달했으나, ‘신뢰’는 발달하지 못했다.
믿을 수 없는 파트너와는 협력할 수가 없다. 자유주의 자본주의 국가들은 정치 자본주의 국가들과 경제 협력을 줄이고 있다. 이들에 의존할 경우, 자유주의 체제가 흔들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트러스트 쇼어링’은 그 결과물이다. ‘트러스트(Trust)’, 즉 신뢰할 수 있는 국가들에서 ‘쇼어링(shoring)’ 즉 생산시설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정치 자본주의 국가에 생산을 의존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트러스트 쇼어링이 강화될수록, 두 개의 자본주의 간 단절도 강화될 것이다.
트러스트 쇼어링은 한국에는 기회이지만 위기이기도 하다. 미국과 유럽이 전기차 배터리를 중국에 의존하지 않으면 한국이 가장 큰 수혜를 받을 수 있다. 특히 한국의 반도체가 트러스트 쇼어링에서 빠진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반도체의 경우 시스템 반도체 설계는 미국, 그 생산은 대만, 메모리 반도체 설계·생산은 한국이 맡는 식으로 공급망 체계가 이미 구축돼 있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이다. 중국의 보복이 우려된다.
우리는 ‘중립’이 아닌 ‘중용’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중립은 미국과 중국 어느 편도 들지 않는 것을 뜻한다. 그건 자유주의 법치 체제인 우리의 길이 될 수 없다. 우리는 구체적인 문제마다 최적의 해결책을 찾는 ‘중용’을 해야 한다. 
옛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적절한 사람에게, 적절한 범위로, 적절한 때에, 올바른 동기를 갖고, 올바른 방법으로 행동하는 게 중용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에 올바른 동기는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다. 그 동기를 기반으로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올바른 방법으로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현실에서 찾아야 한다. 어떤 교조적 원리나 원칙은 있을 수가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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