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배 주필
국회가 새로운 규제의 산실이 된 것은 오래된 일이다.
역대 국회에서 발의된 의안 수가 1만 건을 넘어선 것이 18대 국회인데 그 이후 증가 일로를 걸어와 20대 국회에서는 드디어 2만 건을 넘어섰고 절반 정도의 임기를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이미 1만 4000건이 넘는 의안이 발의됐다. 반대로 발의된 의안들의 통과율은 저하 일로인데 18대 때 40%에서 21대에는 28%로 낮아졌다. 결과적으로 국회 차원에서 발의되는 의안들의 수는 늘어나는 데 비해 그 질은 현격히 떨어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소집한 ‘규제개혁장관회의’에 참석했던 김도훈 서강대교수는 의원입법의 범람 현상을 ‘황사’로 비유했다가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다. 국회의 고유 권한인 입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질책에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지만 의원입법의 질적 저하를 막기 위한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 국회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모든 의안은 사회적 필요성 때문에 만들어지고 공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틀림이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타날지도 모르는 혁신의 저해, 국민 생활의 불편, 경제적 악영향 등 부작용의 가능성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선진국들에서는 그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의안들의 질적 개선을 위한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독일 또한 의회의 요청을 전제로 의원 발의 법안에 대해 사전·병행·사후 평가 등 3단계 영향 평가를 실시한다.
우리 국회도 하루빨리 이런 제도적 장치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국회 차원에서 과감한 규제 개혁을 선도해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윤석열 정부 출범 직전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기업들의 규제 개혁 체감도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예상대로 불만족이라는 응답이 나왔는데, 그 이유로 해당 분야 규제 신설·강화, 핵심 규제 개선 미흡 등이 핵심으로 지적됐다.
기업들이 제시한 해법 두 가지는 경기 진작을 위한 한시적 규제 유예와 글로벌 스탠더드에 어긋나는 규제 개선이다. 국회가 경기 활성화와 글로벌화에 앞장서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어떤 형태로든 재계의 통 큰 행보에 국회가 화답해야 할 때다. 그래야만 미중 갈등, 국제 공급망 재편 등 국제적인 산업 질서가 요동치고 있는 시기에 우리 산업들도 한발 앞서나갈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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