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파 배우 강수연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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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파 배우 강수연을 기리며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2.05.16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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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라제기 영화전문 기자는 “한국 영화가 1980년대 암흑기를 거쳐 2000년대 세계 영화계로 나아가는 여정에서 고인이 발판 역할을 했다. 국내 언론은 잇단 영화제 수상 이후 고인의 이름 앞에 국내 배우 최초로 ‘월드스타’라는 수식을 붙이기 시작했다.”(한국일보, 2022.5.9.)고 말한다. 지난 5월 7일 우리 곁을 떠난 배우 강수연에 대해 한 말이다.
나는 강수연 부음 소식을 접하고 지금까지 펴낸 12권의 영화평론집들을 새삼 펼쳐 보았다. 말할 나위 없이 내가 본 강수연 출연 영화들에 대해 지난 날 쓴 글들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요컨대 내가 지금까지 강수연 출연 영화들을 보고 그의 연기에 대해 쓴 글들을 모아 고인(故人)을 영원히 기리고자 하는 것이다.

1990년대 발간한 평론집들에서 강수연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찾을 수 있었다. 나의 첫 영화평론집 ‘우리영화 좀 봅시다’(1992)를 비롯 ‘한국영화 씹어먹기’(1995)·‘한국영화산책’(1996)·‘한국영화를 위함’(1999) 등이 그것이다. 2004년 펴낸 방송평론집 ‘텔레비전 째려보기’에도 강수연에 대한 글이 있다. 순서를 살짝 바꿔 먼저 이것부터 얘기해보자.  
2001년 1월 중순 각 일간신문 연예면에는 환하게 웃는 사진과 함께 강수연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연예면에 스타의 소식 실리기가 예사이지 뭔 호들갑이냐 나무랄 독자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럴만하다. 영화만을 고집해오던 월드스타 강수연이 16년 만에 TV 출연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SBS 드라마 ‘여인천하’(2001.2.5.~2002.7.22.)다.
내가 쓴 책들인데도 눈에 띄는 건 다른 배우들과 비교해 강수연 연기 이야기가 유독 많다는 점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선 배우들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나의 영화비평 태도를 감안하면 꽤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강수연이 왕성한 배우 활동을 했다는 증표가 아닐까? 또한 강수연이 해당 영화를 업(UP)시키는 연기파 배우였던 게다.    
이제 본격적으로 강수연 연기에 대한 글들을 만나보자. 무엇보다도 그것들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이유는 강수연의 연기에 있다. 왕서방 앞에서 처음 옷을 벗을 때 흘리는 미소 등 표정 연기는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 영화인 ‘씨받이’에서보다 윗길로 보인다.(‘감자’) 강수연의 연기는 옥녀라는 극중인물에 철저히 맞아떨어져 영화 보는 즐거움을 더해준다.(‘씨받이’)
또한 한국영화계에서 강수연의 운신은 놀라운 바 있지만, 적어도 사랑한다는 말 한번 없이 사랑을 표현해내는 발광형 연기는 새삼 감동적이다. … 최근 이문열의 베스트셀러 소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를 각색한 같은 제목의 영화에서도 강수연이 보여주던 그 발광형 연기다.(‘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한편 강수연의 출연료는 12만 달러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개봉된 ‘베를린 리포트’에서도 1억 원을 현찰로 받았다고 하는데, 과연 그 값을 해냈는지 따져 보자. 내가 기억하기로 강수연의 연기가 일품인 영화는 손창민과 공연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이다.(‘낙산풍’-대만영화로 강수연의 첫 외화 출연작.)
우선 실망스러운 것은 이 영화의 중요한 부분인 재희(강수연)의 섹스신이 미스터리와 잘 맞아 떨어지지 않은 채 각각 놀고 있는 점이다. … 한편 신인(김병세)과 해보인 강수연의 섹스 연기는 좀 서두른 것이 흠이었지만, 그런 대로 볼거리였다. 그녀가 출연한 어떤 영화보다도 잦은 섹스신에서 강수연의 표정·자세·분위기 등은 압권이었다.(‘장미의 나날’)
우선 강수연(장은영 역)의 섬세한 심리연기를 특기할만하다. 도입부에서 강한 거부감을 보인 끝에 오세근(최민수)과 키스하는 사실감을 보이더니 “날 안믿는 거죠”할 때나 “왜 전화한 게 잘못이예요?” 물을 때의 백치미어린 표정 연기가 그것이다. 에로틱 스릴러가 아니라면 선뜻 이해하기 힘든 장은영의 그런 천사와 악마의 이중적 모습을 강수연이 과연 월드스타답게 섬세한 심리연기로 커버해낸 것이다. 그런 모습은 결말의 “당신을 사랑했어요. 하지만 날 믿지 말아요”에서 절정을 이룬다.(‘블랙잭’)
이렇듯 한 배우에 대해 각기 다른 7편의 영화에서 연기 이야길 한 것은 1985년 영화평을 쓰기 시작한 이래 아마도 처음이 아닐까 한다. 지난 7~8일 이틀 연속 빈소를 찾은 임권택 감독은 “제 입장에서는 좋은 연기자를 만난 행운 때문에 내 영화가 좀 더 빛날 수 있었다. 여러모로 감사한 배우”라며 말을 잇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맞는 말이지 싶다.
임권택 감독은 강수연에게 ‘씨받이’(1987)·‘아제아제 바라아제’(1989)로 각각 베니스영화제·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게해준 거장이다. 그럴망정 강수연이 20년도 넘게 지난 2011년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에 출연한 걸 생각해보면 뭔가 뭉클해지기까지 한다.
한편 영화 속 명대사로 회자되는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자그마치 1,341만 명 넘게 극장을 찾은 ‘베테랑’ 속 황정민이 한 말이다. 이 말은 강수연이 술자리에서 처음 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강수연의 이 말이 너무 멋지다고 생각한 류승완 감독이 대사로 집어넣은 것이란다. 영화인장 영결식과 함께 떠나간 강수연은 연기파 배우다. 부디 영면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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