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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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생각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2.04.20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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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 방송·영화·문학평론가

 

충남 공주는 내게 이웃 같은 곳이다. 예컨대 1994년 중학교 교사 시절 수학여행 인솔차 공주에 갔다. 1990년대 말부터는 공주대학교 주최 전국고교생백일장대회 참가를 위해 학생들 인솔하여 해마다 가곤 했다. 2000년 제5회공주대학교 전국고교생백일장대회에선 제자가 상을 받는 등 좋은 기억이 있는 공주이기도 하다.
공주에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건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을 보면서다. 더 정확히 말하면 40회 말미에서 묘사가 시작된 우금치 전투장면을 보고나서다. 그 이후 방구 뀐 놈이 성낸다고 가해자인 일본의 경제보복이 시작되어 일제(日製) 불매운동 및 시위가 거세게 일고 있는 시국이 이어지면서 더욱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잊고 있었던 백제의 고도(古都) 공주에 다시 가게 했으니 바로 드라마 ‘녹두꽃’의 힘이라 할까. 그런데 공주시청 홈페이지에서 일별한 걸로는 아무래도 미진해 이인휴게소에 들러 공주관광지도를 구하려 했지만 없단다. 공주시 관내에 있는 고속도로 휴게소인데, 의아한 일이다. 공주관광지도는 백제역사유적지구 매표소가 있는 공산성에 가서야 비로소 구할 수 있었다.
어쨌든 나는 중학생 수학여행 인솔 그 무렵 쓴 글에서도 백제시대 최대의 유적이라 할 무령왕릉이 불과 23년 전(1971년)에서야 발굴된 점을 쓸쓸해하며 탄식하고 있다. 그마저도 고총 고분이 153기, 그 유역 면적이 14만 평인 도항·말산리 고분군(경남 함안)이나 신라의 고도 경주 왕릉들에 비하면 좀 약소한 규모다.  
그나마 무령왕릉을 포함한 송산리고분군은 1997년부터 내부관람이 중단됐다. 2003년 개관한 모형전시관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모형전시관을 거쳐 묘지들을 둘러보고 그 입구 앞에 있는 쉼터로 돌아왔다. 의자에 앉아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아낸 후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하나 뽑아 마시곤 삼국중 가장 먼저 망한 백제(BC 18년~AD 660년) 생각에 잠겨본다.
문득 엉뚱하게도 KBS 1TV가 방송한 대하드라마 한 편이 떠오른다. 2010년 11월 6일부터 6개월 남짓 방송한, 백제를 사실상 처음으로 다룬 정통 대하사극 ‘근초고왕’이다. 그러니까 백제를 사실상 처음으로 다룬 정통 대하사극이 고구려와 신라는 물론 심지어 발해보다도 늦게 드라마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를테면 백제의 자존심을 살린 ‘근초고왕’인 셈이다. 그 이듬해인 2011년 7월부터는 두 번째로 백제를 다룬 MBC 대하드라마 ‘계백’이 방송되기도 했다. 그런 백제 무시 내지 홀대와 관련이 있는지 자세히 알 길은 없지만, ‘근초고왕’과 ‘계백’의 시청률도 고구려·신라·발해를 각각 다룬 ‘주몽’(MBC 2006)·‘선덕여왕’(MBC 2009)·‘대조영’(KBS 1TV 2006~2007)에 비해 턱없이 낮았다.
참고로 닐슨코리아(전국 기준)가 집계한 ‘근초고왕’과 ‘계백’ 평균 시청률은 각각 11.0%, 12.2%인데 반해 ‘주몽’ 41.0%, ‘선덕여왕’ 33.6%, ‘대조영’은  26.9%다. 당시 고교에서 교지며 학교신문 지도교사였던 나는 학생들을 내 차에 태우고 ‘주몽’·‘대조영’·‘선덕여왕’ 촬영장인 전남 나주, 강원도 속초, 경북 경주 르포를 다녀오기도 했다.
특히 경주를 간 것은 10월의 일요일이어서 촬영장인 신라밀레니엄파크에서부터 톨게이트까지 1시간도 더 걸리는 등 개고생을 했던 게 지금도 생생할 정도다. ‘근초고왕’·‘계백’ 방송때도 교지며 학교신문 지도교사였지만, 그러나 두 드라마 촬영장 가는 일은 없었다. ‘주몽’·‘대조영’·‘선덕여왕’처럼 인기를 끌지 못해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뼛속까지 백제 사람 후예인 나도 그런 홀대에 동참한 셈이다. 씁쓰름함이 절로 생기지만, 백제를 다룬 대하드라마라 ‘주몽’·‘대조영’·‘선덕여왕’보다 낮은 시청률이었는지 한동안 그런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그렇기에 보란 듯 백제 고도(古都)인 공주의 자존심으로 나태주 시인의 풀꽃문학관을 내세운 게 아닐까?
그런데 참으로 대단한 건 풀꽃문학관보다 공주시다. 그런 문학행사에 필요한 예산을 아낌없이 후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서다. 어느 문학관이든 지자체 지원 없이는 활동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더 없이 고마운 공주시의 문학에 대한 이해와 성원이라 할 수 있다.
문학 홀대가 유독 심한 지자체에 살고 있는 나로선 너무 대견하고, 부럽기도 한 일이다. 말할 나위 없이 특이점이 많은 멋진 풀꽃문학관 감상을 할 수 있게 해줘서다. 공주시의 풀꽃문학관 관련 예산을 없애거나 삭감하지 않고 심의·통과시켜준 공주시의회도 칭찬하고 싶다. 지자체가 애써 세운 문학관련 예산을 마구 삭감해버리는 지방의회도 부지기수여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지난해 7월 23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한반도 5000년 역사에서 백제, 이쪽이 주체가 돼서 한반도 전체를 통합한 때가 한 번도 없었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성공했는데 절반의 성공이었다. 충청하고 손을 잡았다”고 말했다. 선거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온 충청권 표심 구애지만, 백제의 역사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되게 쓸쓸한 백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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