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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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란 무엇인가
  • 허성배
  • 승인 2022.04.1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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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허성배 주필
허성배 주필

 

동로마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는 425년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대학을 설립하였다. 
여기에서는 법학과 의학을 가르쳤는데, 이곳이 세계 최초의 대학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법학자들은 법학이 의학과 함께 가장 오래된 학문이라고 자랑한다. 하지만 법학자들은 2000년 동안 법을 연구하고도 ‘법이 무엇인지’ 누구나 수긍하는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4월25일은 제58회 법의 날이다.
고대 그리스부터 오늘날까지 수많은 철학자와 법학자들은 국가가 만드는 실정법과 별도로 언제 어디서나 보편타당하게 적용되는 자연법이 있다고 설명한다. 자연법은 실정법보다 우월한 정의이고 자연법에 어긋난 실정법은 효력이 부정되어야 한다. 실정법보다 우월한 정의로운 자연법이 존재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인 설명이다. 하지만 무엇이 정의이고 자연법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렵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정의와 자연법이 다른 사람에게는 부정의이고 불법일 수 있다.
실제로 권력자가 자연법을 내세워 독재정치를 하고 전쟁을 일으킨 사례가 있다. 독일의 헌법학자 카를 슈미트는 우리 헌법학계에도 큰 영향을 끼친 훌륭한 학자였다. 그는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한 자연법론자였고, 헌법은 주권자의 결단이라고 하여 주권자의 의지를 강조하였다.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정권은 주권자의 의지에 시대정신과 민족정신을 더하여 제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제거를 합리화하였다. 전쟁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슈미트는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소에서 전범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슈미트의 이론에 문제를 제기하고 법은 순수한 규범이어야 하며 민족정신과 같은 비규범적 요소를 섞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 사람이 한스 켈젠이다. 그는 경험적으로 존재하는 실정법만이 법이고, 법은 법 자체의 논리로 적용되어야 하며, 객관적으로 법을 해석 적용하는 사법부가 헌법을 수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켈젠의 영향으로 그의 조국인 오스트리아에 세계 최초로 헌법재판소가 설립되었다.
실정법만이 곧 법이라고 하는 주장은 ‘악법도 법’이라는 말과 연결될 수 있다. 하지만 법을 만드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이다. 국민주권주의와 권력 분립이 헌법을 통해 실현되면 악법은 사법절차를 통해 제거된다. 민주국가의 헌법은 사법부를 모든 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고 법 전문가를 법관으로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사법부가 주관적 정의가 아닌 객관적 법에 따라서만 재판하여 입법부나 행정부가 헌법이 정한 궤도에서 벗어나는 것을 막으라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국민의 직접투표로 정권 교체를 경험하고 있는 아시아의 민주주의 모범국이다. 그런데 새 대통령이 취임할 때마다 사법 권력의 교체가 논의된다. 사법부가 순수하게 객관적 법 논리에 따라 헌법과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해왔다면 사법 ‘권력’이라는 말을 듣지도, 교체를 논의할 이유도 없다. 사법이 집권 세력의 편에 서서 법을 해석하고 적용해왔다는 의심을 받기 때문에 많은 국민이 사법 권력의 교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눈을 가리고 있는 정의의 여신은 오직 법의 저울에 따라 심판한다. 눈망울을 굴리며 저울 밖의 권력과 여론을 바라보고 저울의 눈금을 무시하는 여신은 정의를 논할 자격이 없다. 인권과 정의는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이지만 모두가 동의하고 수긍하지 않는 정의는 진정한 정의가 아니다. 사법권은 헌법이 제시하고 있는 가치와 원칙에 따라서만 행사되고 운영돼야 한다. 법관은 자신의 주관적 정의관과 가치관을 내려놓고 오직 객관적 법에 따라서만 재판해야 한다. 이제 한국에서 사법 권력이라는 말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법관이 법보다 주관적 정의를 앞세우고 권력을 행사한다면 사법을 담당할 자격이 없다. 그런 법관은 진정한 법 전문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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