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대란 오는데 비축대책 손놓은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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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대란 오는데 비축대책 손놓은 한국
  • 허성배
  • 승인 2022.04.10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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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하는 가운데 한국의 곡물자급률이 20% 밑으로 떨어지면서 식량안보 ‘안전판’이 흔들리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 대외 곡물 파동에 취약해지며 가뜩이나 고공행진을 하는 국내 물가 상황이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 강대국들이 희토류 등 전략물자에 이어 곡물과 식량을 무기화할 경우 수입 의존도가 큰 한국에 상당한 충격이 가해질 수 있다.

지난 7일 통계청에 따르면 3월 소비자물가는 4.1% 급등해 10년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물가 상승요인을 쪼개보면 수입 곡물가격과 연관성이 큰 외식 물가와 가공식품 물가 기여도가 각각 0.83%포인트, 0.55%포인트에 달했다. 지난달 물가 상승분 34%가 외식물가와 가공식품 가격 상승 때문에 발생했다는 얘기다. 특히 외식 물가는 1년 새 6.6% 급등해 1998년 4월 이후 상승폭이 가장 컸다
최근 급등하는 국제 곡물가는 향후 물가 충격으로 고스란히 이어질 전망이다. 통상 선적에서 생산까지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국제 곡물 상승분은 3~6개월의 시차를 두고 국내 음식료 업체 원재료 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주요 음식료 업체들 매출 원가에서 곡물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20~80% 선에 달한다. 한 대형 식품업계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보유한 곡물 비축물량이 3~5개월치밖에 되지 않는다”며 “대체물량을 확보할 수는 있지만 거래처 변경 비용 등으로 도입 단가가 오르고 제품 가격이 더 올라갈 공산이 크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물가 대책이 정부 최대 경제현안으로 부각된 상태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곡물자급률을 끌어올리는 농업정책을 검토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2월 대선 기간에 농림축산식품 부문 공약을 발표하며 “쌀, 밀, 보리, 콩 같은 기초 식량의 비축량을 늘리고 식량 자급의 목표치를 확실하게 달성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인수위 내부에서는 글로벌 곡물전쟁에 대비해 지금부터라도 최소한의 식량 안보 방어기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충돌 같은 전쟁 위험 외에도 식량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변수는 기후변화다. 곡물 생산에 큰 차질을 초래해 곡물 파동이 발생하면 한국은 식량 대란의 한복판에 놓일 수 있다. 한국에서 소비되는 밀 가운데 99% 이상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역대 정부에서 식량안보를 강조한 것이 적지 않았지만 실효성 있는 성과를 끌어내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근혜정부 때는 2017년까지 식량자급률 70%, 곡물자급률 32%를 이루겠다고 밝혔지만 의미 있는 상승을 도출하지 못했다.
급등하는 곡물가격을 방어하기 위해 공공비축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다. 현재 정부의 공공비축 대상 품목은 쌀·콩·밀 등 3개 품목에 그친다. 공공비축 계획도 미흡하다. 밀과 콩은 구체적인 비축 목표가 없고 쌀은 ‘전체 쌀 소비의 17~18%를 유지한다’고 정해놨을 뿐이다. 
수입처 다변화와 국내 곡물 생산성을 끌어올릴 필요성도 제기된다. 현재 밀·콩·옥수수 3대 품목은 2~3개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밀은 미국·호주·우크라이나에서 80%가량을 들여오고, 콩은 미국에서만 83.9%, 옥수수는 미국·브라질·아르헨티나에서 80% 이상을 수입한다. 또 2009~2019년 평균 정부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을 보면 쌀은 18.7%에 이르지만 콩과 밀은 각각 5.2%, 2.4%에 불과할 정도로 R&D 투자 실적이 저조하다.
곡물대란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곡물수급 안정을 위해 새만금에 최신 저장 설비 등을 확충하는 식의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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