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의 선택적 소신이 씁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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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의 선택적 소신이 씁쓸한 이유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2.03.0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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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베네치아 공화국 역사를 다룬 시오노 나나미의 ‘바다의 도시 이야기’에 보면 ‘페카토 모르탈레’란 말이 나온다. 이탈리아어로 ‘용서받지 못할 죄’라는 뜻이다. 공직자가 국가 예산을 낭비하는 것과 기업인들이 이익을 내지 못하는 것을 가장 큰 죄라 했다. 이를 가슴에 새기고 일한 공무원, 기업인이 많아 베네치아는 중세에 번영을 구가했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페카토 모르탈레를 가장 경계한 이로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첫손에 꼽힐 듯하다. 지난달 21일 국회를 통과한 자영업자 지원 추가경정예산(16조9000억원)은 사실상 홍 부총리의 승리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야당 국민의힘이 각각 35조원, 50조원을 줄기차게 외쳤음에도 홍 부총리가 재정 여건, 물가 불안, 대외신인도 등을 이유로 16조원+α를 고집했고 이를 관철했다. 

이재명 대선 후보를 위시해 집권 여당이 추경 증액을 반대하는 홍 부총리에게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폭거”, “목을 쳐야 한다” 등 원색적 비난을 퍼부었지만 소용없었다. 미래권력에도 홍 부총리는 굽히지 않았다. 어쩌면 임기 중 마지막일지 모를 홍 부총리의 이번 소신을 개인적으로 적극 지지한다.
하지만 소신 역시 초지일관이 중요하다. 위기 때나 평시 때나 경제 수장은 정치라는 외풍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국가경제의 미래만을 생각해야 한다. 홍 부총리는 2018년 12월에 취임했다. 2019년도 예산은 김동연 전 부총리가 편성하고 홍 부총리가 집행했으며 2020년도 예산은 홍 부총리가 편성했다. 2019년도 예산 증가율(전년 본예산 대비)은 9.5%로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10.6%) 이후 최고치였다. 2020년도 예산 증가율도 9.1%로 역시 슈퍼예산으로 불렸다. 코로나 사태 후인 2021년도와 올해 예산 증가율은 모두 8.9%다.
쉽게 말해 코로나 위기가 오기 전에도 재정은 방만했고 그 중심에 홍 부총리가 있었다는 얘기다. 계속 퍼주다가는 큰일 난다던 홍 부총리가 정작 재정 불안의 단초를 제공한 셈이다. 
2019년에 글로벌 경기가 부진하긴 했지만 위기 국면으로 보긴 어려웠다. 2011년 유럽발 재정위기가 닥친 뒤인 2012~2013년 예산 증가율이 평균 5.2%인 점을 고려하면 홍 부총리의 임기 초 재정 운용 및 편성은 지나치게 확장적이었다. 2019년에도 추경이 한 차례 편성됐다. 명목이 ‘미세먼지’ 대응이다. 총선 1년을 앞두고 대통령이 먼저 불을 지피긴 했다. 코로나 위기에도 곳간 걱정에 추경 규모를 최소화하자던 홍 부총리가 한가하기 짝이 없는 5조8000억원짜리 낭비성 추경을 밀어붙였다. 
정치의 문제가 크지만 경제 총괄인 그의 책임도 없지 않다. 평소에 총알을 실컷 써버린 바람에 정작 전쟁이 터진 뒤 총을 쏘지 못하면 욕먹기 십상이다. 코로나 전후의 홍 부총리가 딱 그 꼴이다.
재정은 그나마 낫다. 다른 경제 정책의 부작용이 우려될 때 홍 부총리는 청와대를 의식했는지 몰라도 임기 내내 거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여당조차 손절한 소득주도성장은 정권 초부터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청년 일자리 감소, 소득 양극화 등을 초래했다. 상위 10%의 1인당 연평균 소득은 2016년 대비 2020년 1429만원 증가한 반면, 하위 10% 소득 증가액은 17만원에 그쳤다. 실제 홍 부총리가 편성한 예산에도 현금 살포용 항목이 적지 않았다. 효과도 없고 경제 성장에 장애가 된 소득주도성장에 대해 “보완하며 강화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뭐니 뭐니 해도 그의 가장 큰 실책은 부동산 정책에서의 침묵이다. KB부동산에 따르면 부총리 취임 후인 2019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전국 아파트 가격은 31% 급등했다. 특히 2020년 7월 시행된 임대차법 개정안은 부동산 시장 왜곡의 핵심이었건만 “주거안정을 높였다”고 억지를 부렸다.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본인이 임대차법 때문에 집이 팔리지 않아 오도 가도 못한 신세가 된 바 있다. 그럼에도 정권의 스피커로 자화자찬만 일삼았다. 코로나 추경 결기의 10분의 1만 부동산 정책에 쏟았다면 집값이 이렇게 뛰지는 않았을 것이다. 늑장 소신으로 국가 부채 1000조원 시대를 막지 못했고 무소신으로 민생경제 피해를 자초했다. 
페카토 모르탈레를 피하려면 임기 시작부터 국민만을 바라보며 경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 홍 부총리의 선택적 소신은 차기 정부 경제사령탑에게 주는 반면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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