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액 적정선 20년만에 첫 붕괴… 나랏빚 증가율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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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보유액 적정선 20년만에 첫 붕괴… 나랏빚 증가율 1위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2.03.0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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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외환보유액과 재정건전성은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 신인도를 지키는 양대 산맥이다. 하지만 잇단 무역적자에 달러 유출 속도가 빨라지며 외환보유액이 줄고 있는 데다 대통령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퍼주기식’ 포퓰리즘 정책에 나서며 중장기 재정건전성에도 금이 가고 있다. 국가신인도를 받치는 축이 모두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1월 17일 국제통화기금(IMF) 최신 외환보유액 통계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외환보유액 적정선이 붕괴된 것으로 나타났다. IMF는 ▲연간 수출액의 5% ▲시중 통화량(M2)의 5% ▲유동외채의 30% ▲외국인 증권 및 기타 투자금 잔액의 15% 등을 합한 규모의 100~150% 수준을 적정 외환보유액으로 계산한다. 그런데 2020년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 비중은 99%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0년 이후 처음으로 100% 선 아래로 가라앉았다. 한국의 적정 외환보유액 비중은 2000년만 해도 114%에 달했지만 2018년 이후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외환보유액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단기외채 등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빨랐기 때문이다. 저금리 유동성 환경에 지난해 통화량이 급증했고 단기외채(지난해 3분기 기준)도 1년 새 185억달러가 불어나 적정 외환보유액은 더 악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날 한국은행은 1월 외환보유액이 4615억3000만 달러로 중국, 일본, 스위스, 대만 등에 이어 세계 8위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최근 외환보유액 감소는 달러 가치 강세 등에 따른 현상”이라며 “여러 지표들을 통틀어 볼 때 우리나라 국가신인도에 문제가 생겼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외환보유액 절대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국가 경제규모와 특성에 따른 외환보유액이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글로벌 공급망 붕괴와 미국 등 주요국 금리 인상 리스크, 우크라이나 지정학적 위기 등 대외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더 많은 외화 비상금을 확보해야 한다는 분석이 많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우리나라는 외국인 주식 투자 비중이 높고 북한과 안보 이슈도 고려해야 한다”며 “외환보유액을 다른 나라보다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도 “무역수지가 계속 적자가 나면 외환보유액이 지속적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다”라며 “외환보유액이 줄어들 가능성이 훨씬 커졌다”고 말했다. 중장기 재정건전성 상처가 깊어지고 있다는 점은 국가신인도의 또 다른 역풍이다. 이미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는 1월 27일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AA-로 유지하면서도 재정 여력에 대해서는 우려감을 표했다. 피치는 “한국이 단기적으로 국가채무 증가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국가채무비율 전망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며 “이는 중기적 관점에서 신용등급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런 가운데 또 다른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S&P는 대선 이후인 4~5월 한국 신용등급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재정 확대 목소리가 더 강해질 것으로 관측되는 시점에 신용등급을 내놓는 것이다. IMF 재정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6년 한국의 일반정부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66.7%까지 불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해 51.3%에 비해 15.4%포인트 뛰어오르는 것으로, IMF가 선진국으로 분류한 35개국 가운데 빚 늘어나는 속도가 가장 빠르다. 김정식 교수는 “정치권에서 한국의 재정건전성이 선진국에 비해 낫다고 주장하지만 국제통화를 갖고 있지 않는 한국을 선진국과 비교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앞으로 나랏빚은 이 같은 관측보다 더 늘어날 공산이 크다. 국가채무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규정한 재정준칙법(국가재정법)이 1년 넘게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 압박으로 잇따라 추가경정예산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가 추경 규모를 정부안인 14조원보다 2~3배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어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적자국채 발행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재정을 늘려야 하지만 일정 시점이 지나면 제동을 걸어야 한다”면서 “한국에는 재정준칙이 없어 재정정책에 제동 장치가 없다”고 말했다. 우 교수는 “코로나19 국면 이후 어떻게 재정 규모를 효율화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나와야 하는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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