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는 박근혜 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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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는 박근혜 사면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1.12.28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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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 방송·영화·문학평론가

2021년이 저물고 있다. 백신 접종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승을 부려 지난 해 못지 않게 심란한 세밑이다. 내년에 3·9대선까지 있어 연일 대통령 후보들의 각종 의혹 등 동정을 접해야 하는 고충이 가세된 세밑이기도 하다. 이런 와중인데, 지난 24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난데없는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난데없는’이라고 말한 것은 문 대통령의 생각이나 국민의 부정적 여론이 계속되어 이번 성탄절 사면에서 제외될 것이란 게 중론(衆論)이어서다. 문 대통령은 새해 회견에서 “과거의 잘못을 부정하고, 재판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차원에서 사면을 요구하는 이런 움직임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상식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저 역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 5월 취임 4주년 특별연설 뒤 질의응답에선 사면 불가에 대한 완강함이 조금 누그러진 태도를 보였다. “고령이시고 건강도 좋지 않다고 하니까 더더욱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국민 통합에 미치는 영향, 우리 사법의 정의, 형평성, 또 국민들 공감대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판단해 나가겠다”고 말한 것이다.
여론조사도 부정적인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나오곤 했다. 가령 11월 27~29일 채널A·리서치앤리서치의 여론조사에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에 대한 찬성은 39.2%인데 반해 반대는 43.7%였다. 특히 같은 조사에서 핵심 촛불 세대인 3040세대는 과반이 사면에 반대했다.
아무튼 박 전 대통령이 2017년 3월 31일 구속된 지 4년 9개월 만에 이루어진 사면이다. 문 대통령은 박경미 대변인 발표를 통해 “우리는 지난 시대의 아픔을 딛고 새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과거에 매몰돼 서로 다투기보다는 미래를 향해 담대하게 힘을 합쳐야 할 때다. 이번 사면이 생각의 차이나 찬반을 넘어 통합과 화합, 새 시대 개막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사면을 반대한 분들의 넓은 이해와 해량을 부탁드린다”고도 말했지만, ‘촛불 정신 훼손’ 등 비판이 이어졌다. 참여연대는 성명을 내 “박근혜의 탄핵과 사법처리는 촛불 시민들의 힘으로 이뤄진 것으로 대통령의 정치적 사면은 촛불 시민들의 의사에 반한다”며 “사회적 통합과는 거리가 멀고,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고려에 따른 사면이다”라고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도 “‘촛불정부’를 자임하며 시작한 문재인 정부가 국민을 배신했다”며 “문 대통령은 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 등 ‘5대 중대 부패 범죄’를 저지른 인사의 사면은 배제한다는 원칙을 스스로 어기면서 대통령의 지위를 남용해 독재적으로 사면권을 행사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한편 박 전 대통령은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많은 심려를 끼쳐드려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 아울러 변함 없는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다. 어려움이 많았음에도 사면을 결정해 주신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 당국에도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신병 치료에 전념해 빠른 시일 내에 국민 여러분께 직접 감사 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런데 박근혜 사면 단행후 나온 여론은 이전과 좀 다르다. 여론조사업체 서던포스트가 CBS 의뢰로 지난 24일부터 25일까지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0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조사(무선 100%)한 결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특사 결정에 ‘잘한 결정’(매우 잘한 결정 16.6%, 잘한 결정 43.2%)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59.8%에 달했다.
반면 ‘잘못된 결정’이라는 응답 비율은 34.8%(매우 잘못된 결정 15.5%, 잘못된 결정 19.3%)였고, 모름/무응답은 5.3%로 집계됐다. 특이한 건 연령대별 찬반 양상이다. 20~30대에서는 ‘잘못된 결정’이라고 답변한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40대 이상에서는 ‘잘한 결정’이라는 응답이 높아 연령대별 인식이 상반되는 경향을 보였다.
60대 이상에선 82.9%가 박 전 대통령 사면 조치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는데, 60대 중반인 나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얼마 전 사망한 내란 수괴 전두환의 ‘준동’이 떠올라서다. 1997년 12월 김영삼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 전두환의 특별사면을 합의한 뒤 석방했다. 이후 전두환은 죽을 때까지 끝내 사과 한 마디 없이 국민들 가슴에 울화를 심어주곤 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전두환씨도 ‘국민통합’ 명분으로 사면을 받았지만, 5·18 유가족들에 대해 사과를 한 적도 없고, 도리어 국론만 분열시켰다”(한겨레, 2021.12.25.)는 지적이 따끔하게 와닿는 건 그래서다. 문 대통령은 도대체 무엇이 아쉬워 국민공감대 등 스스로 밝힌 원칙을 깨면서까지 진정한 사과가 없는 박근혜 사면을 단행한 것일까?
임 교수는 “박 전 대통령도 국정농단에 대해 반성이나 사과가 없다. 전씨 경우처럼 앞으로 어느 시점에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하고 지지자들이 동조하면서 국론이 분열될 수밖에 없을 것”(앞의 한겨레)이라고 내다봤다. 난데없는 사면이라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다. 부디 과거 전두환 사면처럼 국민 억장 무너지게 하는 악수(惡手)가 아니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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