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수괴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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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수괴 전두환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1.12.14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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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 방송·영화·문학평론가

내란 수괴 전두환이 11월 23일 사망했다. 먼저 이 글 제목인 ‘내란 수괴 전두환’은 5·18서울기념사업회 한상혁 고문이 대법원 최종 판결에 의거해  주장한 표현이다. 백번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 나도 그렇게 하기로 했음을 밝혀둔다. ‘전 대통령’이니 ‘전두환씨’, 나아가 ‘국민 학살자’ 등 매체마다 호칭이 달라 혼란스러운 모양새를 보인 바 있어서다.    
아울러 다들 ‘5·18민주화운동’이라 말하는데 나는 ‘5·18광주민중항쟁’이라 부르려 한다. 지진 같은 자연재해가 아니고 군인들에 의해 수많은 살상(殺傷)이 벌어진 비극적 대형 참사에 ‘운동’이란 용어가 좀 생뚱맞게 느껴져서다. 흔히들 ‘3·1운동’이라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3·1운동도 ‘3·1만세시위’라 부른다.

아무튼 10월 26일 사망한 노태우에 이어 그로부터 한 달도 채 안돼 내란 수괴 전두환이 90세로 우리 곁을 떠났다. “한국현대사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도 언제나 ‘뻔뻔한 당당함’을 유지했던 학살자”(한겨레, 2021.10.26.)에 대해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한국에서 가장 비난 받는 군사독재자가 죽었다”고 전했단다.
이로써 1979년 12·12 쿠데타 두 주역이 완전히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반성이나 사과는 없었다. 장례식장에 모습을 드러낸 ‘전두환 똘마니들’이 아직도 ‘뻘소리’를 해대는 것도 그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마치 이른바 성노예 위안부 문제에 대해 시인은 물론 사과도 하지 않고 있는 일본 정부를 연상케 하는 행태라 할 수 있다.
미망인 이순자씨가 “남편의 재임중 고통을 받은 분들께 남편을 대신해 사죄드린다”고 밝혔지만, 말인지 막걸리인지 알 수 없다. 어느 누구도 사과라 생각하지 않는데도 민정기 전 비서관이 친절한 해설까지 덧붙였다. “5·18 관련한 게 아니라 포괄적인 말씀을 하신 것”이라나 뭐라나. 
나는 이미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보내며’(전북연합신문, 2020.5.28.)와 ‘5·18 영령들 이제는 보내줘야’(2020년보훈콘텐츠공모전 당선작모음집, 2020.12.30.) 같은 글을 쓴 바 있다. 거기서 말한 내용과 가급적 겹치지 않게 하려 하지만, 5·18광주민중항쟁이란 팩트엔 어떤 변화도 없다는 중복 지점이 있다.
5·18광주민중항쟁은 12·12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세력이 거세게 저항하는 광주 시민들을 무장 병력을 투입해 제압한, 벌어져선 안될, 7년 전 벌어진 세월호 참사와는 또 다른 대한민국 잔혹사다. 이후 이어진 제5공화국만 보더라도 전두환 등 신군부세력이 정권을 잡기 위해 자행한 천인공노할 만행이라는 게 엄연한 팩트다.
앞의 한겨레 보도를 토대로 잠깐 5공 이후를 정리해보자. 내란 수괴 전두환은 1980년 8월 ‘체육관선거’로 불린 통일주체국민회의 간접선거를 통해 9월 1일 제11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헌법 개정을 거쳐 이듬해 2월 제5공화국 12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전씨가 이끈 신군부 세력은 군홧발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짓밟았다.
예컨대 언론통폐합을 통한 보도통제를 했고, ‘사회정화’란 이름 아래 삼청교육대·형제복지원 등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끌려가 다치고 죽었다.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계기로 민주화 요구가 폭발했지만, 전씨는 대통령 간선제로 차기 대통령을 뽑겠다는 4·13 호헌조치를 발표했다. 이는 결국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으며 5공화국 몰락으로 이어졌다.
전직 대통령 전두환은 친구 노태우가 대통령이던 1988년 여소야대 정국에서 5공 비리 및 광주학살 진상조사를 받게 된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뒤엔 12·12 군사반란 및 5·18 유혈 진압에 대한 수사·재수사가 진행됐다. 결국 전두환 등은 1995년 12월 반란수괴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다. 이듬해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됐지만,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뒤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이 확정됐다.
그해 12월 김영삼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 그의 특별사면을 합의한 뒤 석방한다. 사실은 이게 악수(惡手)였지 않나 싶다. 일종의 면죄부라 죄의식은커녕 5·18광주민중항쟁 희생자 및 그 유족들은 물론 국민들 억장을 무너지게 하는 행보를 죽을 때까지도 보여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2017년 낸 회고록이다.
무릇 회고록이란 지난날 과오를 가감없이 드러내는 반성이 담기기 마련인데, 전두환은 그러지 않았다. 가령 내란 수괴 전두환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당시 계엄군 헬기 사격을 두고 고(故) 조비오 신부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11월 광주지법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알츠하이머 등 건강 문제를 들어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던 그는 재판이 열리는 날 골프장에서 목격되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다. 내란 수괴 전두환은 2019년엔 그 똘마니들을 불러모아 쿠데타 40주년 기념 만찬을 즐기는 장면이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다. 이승만·박정희는 그만두더라도 이명박·박근혜에 이어 이런 전직 대통령이 있는 나라의 국민이라는 게 쪽팔릴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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