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미국과 함께 북핵 막으라는 아프간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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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미국과 함께 북핵 막으라는 아프간 경고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1.09.16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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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점령을 앞두고 어떻게든 탈출해 보려고 미군 수송기에 매달리는 아프간 국민의 처참한 광경은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화물 대신 아프간 피란민을 한가득 실은 미군 수송기의 모습은 1950년 흥남부두 철수나 1975년 사이공 함락 당시 피란민 사진과 놀랍게도 흡사해 보인다. 흔히 ‘제국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아프간이 과거 대영제국과 구소련에 이어 미국도 묻어 버렸다는 자조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번 사태에 대한 미국 내 정치권과 언론의 반응은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거의 비난 일색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한 칼럼니스트는 ‘바이든의 체임벌린 모먼트’라고 비꼬았다. 1938년 유화적인 뮌헨협정에 서명함으로써 히틀러에게 체코 침공의 길을 터준 체임벌린 영국 총리처럼 미국의 대외정책 중 최대의 패착이라는 것이다. 미 의회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철군 결정에 대한 조사 요구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카불 함락 후 기자회견에 나선 조 바이든 대통령은 단호했다.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고 “아프간 정부가 포기한 전쟁에서 미군이 희생돼서는 안 된다”며 “미국의 국익이 없는 곳에 머물며 싸우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지난주 자살폭탄 테러로 13명의 미군이 희생되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더욱 궁지에 몰리는 형국이다.
아프간 사태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아프간은 최빈국 중 하나이고 정치·경제 등 모든 면에서 ‘실패한 국가’로서, 언제 미국이 손을 놓더라도 지금과 같은 사태는 벌어질 수밖에 없는 나라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최근 선진국 지위도 인정받은 한국에 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모욕이다. 그런데도 아프간의 몰락이 미국의 동맹·우방들에 미칠 영향, 특히 2만8500명의 주한미군이 있는 한국에 갖는 함의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일은 미국이 철저하게 국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임을 깨닫게 하는 결정적인 사례다. 미국은 지난 20년간 모두 2조 달러의 전비와 한때 14만명에 이르는 미군을 아프간에 투입했다. 전사한 미군만도 2500명에 육박한다. 이렇게 엄청난 인명과 자산을 쏟아부은 나라를 ‘손절’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기치로 내세우며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를 내세운 사람이다. 미국 안팎으로 원성이 쏟아질 줄 알면서도 바이든 대통령이 결단한 것은 그 자신도 언급했듯이 “전략적 경쟁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이 아프간에 무한정 자원과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을 즐길(love)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대 중국 경쟁에 집중하기 위한 냉철한 판단인 것이다.
미국의 아프간 철군이 한국과 유럽에 영향을 미치느냐는 질문에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군 감축 의향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의지를 믿어 의심치 않지만, 불과 1년 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독일이 충분한 국방비 지출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둔 미군 감축을 추진했고, 재선되면 반드시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증언이 담긴 책(‘I alone can fix it’)도 나왔다. 바이든 행정부가 진행 중인 ‘세계 병력태세 검토’ 결과에 따라서 주한미군 수가 조정될 수도 있고, 종전선언이 이뤄져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됐다는 허상이 미국에도 감염되면 미군 철수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 2만8500명은 ‘매직 넘버’가 아닌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주국방의 능력과 의지를 갖춰야 한다. 북한을 주적(主敵)으로 부르지 못하고 명백한 북한 탄도미사일을 ‘불상의 발사체’라고 둘러대는 군(軍)이 아니라, 기강이 서고 기백이 넘치는 군대다운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 한·미 연합훈련을 통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위한 조건을 갖추고, 우리 국방력을 볼모로 잡힌 9·19 남북 군사합의서를 폐기해야 한다. 북한 미사일 방어를 위해 들여온 사드(THAAD)를 정식 배치하고, 북한의 핵 보유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되기 전에 핵 인질이 되지 않을 방안을 미국과 함께 마련해야 한다. 아프간의 비극은 우리의 안이함을 깨우는 웨이크 업 콜(wake-up call)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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