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에 놀아난 소위 사회지도층 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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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에 놀아난 소위 사회지도층 인사들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1.08.03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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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 방송·영화·문학평론가

보도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지난 2월 초 ‘100억원대 조직폭력사기단’에 관한 첩보를 입수해 수사에 착수했다. 직원 중 조직폭력배가 있어서 그리 한 것인데, 가짜 수산업자 김씨의 사기행각이 드러났다. 김씨는 올 3월 말 100억원대 사기 혐의로 구속·수감됐다. 그런데 김씨는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돌연 포기하고 자신이 로비한 대상을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경북 포항에 있는 수산물업체 부림물산의 회장 명함을 갖고 다닌 김씨가 116억원에 달하는 사기 외에도 전·현직 국회의원과 검찰·경찰 간부 등에게 독도새우·대게·전복 등 수산물을 선물로 보냈다. 김씨는 차량이나 골프채와 고급시계 등 금품을 대여하거나 제공하기도 했다. 사기를 치는 한편 인맥을 크게 넓혀간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난 해 6월부터 김씨를 도왔다는 담당 직원은 “김씨가 ‘내 배경에 힘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너희가 하고 싶은 일은 다해도 된다’ 이런 식으로 인맥을 과시했다”고 말했다. 담당 직원이 휴대전화에 보관 중인 김씨의 인맥 명단은 최소 27명이나 된다.
여기에는 놀랍게도 국정농단 사건의 박영수 특검을 비롯 특검 파견근무를 한 A검사(두 차례)와 특별수사관 이모 변호사, 특검에 근무 중인 전직 검찰 수사관 등 4명이 들어 있다. 정치권에선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주호영 국민의힘 전 원내대표, 경북 포항이 지역구인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과 보좌관, 김무성·이훈평·이봉주 전 의원 등 9명이 포함돼 있다.
일개 사기꾼에 의해 초토화되다시피한 특검과 정치권 외에도 사립대 전 이사장 및 교수 3명, 포항 관내 경찰서장인 B총경, 연예인 C씨의 모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변인을 지낸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TV조선 엄성섭 앵커, 중앙일간지 논설위원, 종합편성채널 기자 등도 있다. 사기꾼으로 드러난 김씨의 선물이나 금품을 수수한 그들은 소위 사회지도층 인사들이다.
김씨가 소위 사회지도층 인사들에게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수감생활 덕이크다. 2008∼2009년 법률사무소 사무장을 사칭해 서민 36명으로부터 “파산 선고와 면책 결정을 받아주겠다”며 수백만원씩 1억6000여만원을 뜯어낸 김씨는 약 7년간 도피생활을 하다 2015년 검거됐다. 2016년 11월 사기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고, 2017년 5월 형이 확정됐다.
교도소에 들어간 김씨는 교화되긴커녕 수감생활을 함께 했던 월간조선 취재팀장 출신의 송모씨를 통해 김무성 전 의원과 박 특검 등 정치권 인사를 소개받았다. 김 전 의원이 다시 이동훈 전 논설위원 등 언론인을, 이 전 논설위원은 국민의힘 홍준표·김정재 의원 등을 김씨에게 소개했다. 또한 김씨가 정치인 등에게 부탁해 박 국정원장을 소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특검은 특검에서 함께 근무한 A검사가 포항지청으로 발령이 나자 김 씨의 전화번호를 넘겼고,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은 고교 동문인 경찰대 출신의 B총경을 김씨에게 소개했다. 정리해보면 2017년 12월 말 문재인 정부의 첫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돼 풀려난 후 또다시 사기를 치는 한편 금품 살포까지 한 범죄라 할 수 있다.
아무튼 그 과정에서 경찰의 현직 부장검사 사무실에 대한 사상 처음 압수수색이 있었다. 사상 처음으로 경찰의 압수수색을 당한 A검사는 2019년부터 고급 시계 등 2000~3000만원 상당의 금품 수수 혐의를 받고 있다. 박범계 법무부장관은 “2019년이면 엊그제의 일인데 (아직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이) 기가 막히지 않느냐”며 탄식했다.
박 장관이 A검사에 대한 진상조사를 법무부 감찰관에게 지시한 상태인데 “스폰서문화가 여전히 없어지지 않은 건지, 그런 차원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포항관내 모 경찰서장인 B총경은 수사 결과와 상관없이 일단 직위해제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7월 16일 수백만원 상당의 골프채를 받은 혐의(청탁금지법 위반)로 입건된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자택을 압수수색해 골프채·휴대폰 등을 확보하기도 했다. 압수수색 전 이 전 논설위원은 뜬금없이 “정권 사람들이란 이들이 찾아와 Y(윤석열)를 치고 우릴 도우면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다는 식으로 얘기했다”며 여권의 정치공작 운운하기도 했다.
정치인들이야 사람 만나기가 업이랄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렇다고 면죄부가 주어지는 건 아니다. 결과적으로 사기꾼 김씨의 범행을 도와주거나 가담한 꼴이니까. 그들은 자동차나 골프채, 대게와 전복 따위를 살 능력이 없어 그렇게 받은 것인가. 도대체 무엇이 아쉬워 그깟 것들을 받아 사기꾼에 놀아난 것인지 한심하고 슬픈 일이다.
사기꾼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이들은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 세상 남부러울 것 없는 소위 사회지도층 인사들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사기꾼 포함 사업가라면 꺼벅 죽는 사회지도층들을 봐야 하는지, 그로 인해 이 난리법석인지 알 수가 없다. 코로나19 창궐과 폭염에 더해 사기꾼한테 놀아난 소위 사회지도층 인사들까지 참 답답하고 짜증나는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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