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검의 중도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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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수 특검의 중도하차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1.07.2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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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 방송·영화·문학평론가

국정농단 사건의 특별검사 박영수 변호사(69)가 지난 7일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했다. 지금 수감 중인 가짜 수산업자 김모씨에게 현직 검사를 소개시켜 주고, ‘포르셰 파나메라 4’ 렌터카 차량을 제공받은 데 따른 책임성 사표다. 문재인 대통령은 다음날 사표를 수리했다. 박 특검과 더불어 공소 유지를 맡고 있는 특검보 2명의 사표도 함께 수리됐다.
박 특검은 입장문을 내고 “이런 상황에서 특검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해 퇴직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국정농단 특검이 출범한 2016년 12월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30여 명을 수사해 대부분 유죄 확정 판결을 이끌어낸 박 특검이 4년 7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한 것이다.

변호사 겸직 금지 조항 때문에 이전부터 사퇴를 희망해온 이들로서는 바라던 바 아닌가 하는 시선도 있지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나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중도하차와 또다르게 씁쓰름한 뒷맛을 안겨주는 박 특검의 퇴진이라 할 수 있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탄식을 자아내는 충격적 소식이기까지 하다.
박 특검은 입장문에서 특검에 두 차례 파견 근무한 A검사를 김씨에게 소개시켜 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박 특검은 “논란이 된 인물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채 A검사에게 소개해준 부분 등에 대해서는 도의적인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처신으로 논란을 야기한 점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박 특검이 김씨에게 소개해준 A검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입건돼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그 과정에서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현직 부장검사 사무실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이 그것이다. 역사를 새로 쓴 건 A검사지만, 박 특검의 기여도 역시 적지 않은 셈이라 할까.
한편 현직 검사 사무실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은 올해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가능해진 일이라는 게 중론이다. 올해 1월 검경 수사권 조정을 담은 개정 형사소송법이 시행되면서 경찰과 검찰은 수평적 관계가 됐다. “독립성을 보장받은 경찰이 신청한 검사에 대한 영장을 검찰이 정당한 근거 없이 기각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박 특검은 지난해 12월 김씨로부터 포르셰 차량을 제공받은 뒤 올 3월 렌트비 250만원을 뒤늦게 현금으로 지급한 경위 등에 대해선 “사실과 다른 보도 내용에 대해서는 차후 해명하겠다”고 했지만, 7월 16일 국민권익위원회가 “특검은 청탁금지법 제2조 제2호 가목의 ‘공직자 등’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검은 검사와 같거나 그에 준용되는 직무·권한·의무를 지며, 보수·신분보장 등에 있어 검사나 판사에 준하도록 규정돼 있고, 수사 및 공소 제기 등 권한을 부여받은 ‘독임제 행정기관’이라는 것이 권익위의 판단이다. 이는 7월 13일 박 전 특검 측이 권익위에 제출한 ‘특검은 청탁금지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공무수탁 사인(私人)’이라는 내용의 의견서와 다른 결정이다. 
박 전 특검은 의견서를 통해 특검의 직무 범위가 렌터카 등을 제공받은 행위와 관련성이 없으며 공소 유지 기간에는 특검이 겸직을 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권익위 발표에 대해 박 전 특검은 “권익위의 판단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우선 법무부의 유권해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입장문을 냈다.
그러나 법무부는 박 특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민단체 고발장과 권익위 통보를 받은 경찰은 7월 19일 김씨로부터 ‘포르셰 파나메라4’ 렌터카를 제공받은 국정농단 사건의 박영수 전 특검을 피의자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박 특검의 중도하차로 끝날 것 같지 않은 ‘가짜 수산업자 김씨사건’의 파장이다.
박 특검의 중도하차를 몰고온 ‘가짜 수산업자 김씨사건’은 우리 사회가 금품수수로부터 얼마나 취약한 구조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혐의에 올라 수사를 받는 모든 사람이 그렇지만, 특히 박영수 특검에 대한 실망감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국정농단사건 특검 신분으로 그깟 것들을 덥썩 받았다는 게 이해가 안된다.
무엇보다도 당장 박 특검 수사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국정 농단사건 관련자들이 자신에게 내려진 형량에 대한 불복 등 어떻게 생각할지 끔찍할 정도다. 그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까지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 나무란다’고 비아냥을 퍼부어댈까 두려울 지경이다. 백 번을 생각해보아도 이건 아니지 싶다.
일어탁수(一魚濁水)라는 말이 있다. 한 마리의 고기가 물을 흐린다는 뜻이다. 의역하면 한 사람의 잘못으로 여러 사람이 그 피해를 입게 된다는 말이다. 김씨가 일어탁수인 건 맞지만, 근묵자흑(近墨者黑)이란 말도 있다. 먹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검게 된다는 뜻이다. 나쁜 사람을 가까이하면 그 버릇에 물들기 쉽다는 말이다. 박 전 특검은 이 말을 몰랐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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