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 형 확정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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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 형 확정을 보며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1.01.25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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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 방송·영화·문학평론가

오해가 없게 하기 위해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어떤 이념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남들이 보수로 분류하는 60대 중반이지만, 나는 아니다. 그렇다고 진보도 아니다. 따라서 일부에서 즐겨쓰는 좌파나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면  중도일텐데, 그것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어떤 사안에 대해 객관적이면서도 일반 상식과 부합하는 판단을 가치로 알고 글을 쓰는 평론가다.
1월 14일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국고손실·직권남용 혐의 등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20년 형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삼성·롯데에서 수십 억원의 뇌물을 받고 이병호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특활비 2억원을 받은 혐의(뇌물)로 징역 15년과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또 국정원 특활비 34억 5,000만원을 챙긴 혐의(국고손실) 등으로 징역 5년을 선고하고 추징금 35억원을 명령한 원심을 확정했다. 다만,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실행을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등에 대한 일부 무죄 판결은 유감스럽다. 박근혜 정부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피해를 당한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있는데도 ‘아랫것들이 알아서 긴’ 모양새가 되어서다.
아무튼 박 전 대통령의 형량은 이보다 앞서 2018년 11월 공천 개입 혐의로 확정된 2년을 합쳐서 22년이다. 앞으로 남은 형기는 19년 남짓이다. 사면을 받지 못하면 만 87세가 되는 2039년 3월에 만기 출소하게 한다. 이로써 비선 실세 국정농단으로 일어난 촛불혁명 끝에 탄핵·파면된 박 전 대통령 사법처리가 거의 4년 만에 끝났다.
선고 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 뇌물공여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도 합당한 판결이 선고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래서일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월 18일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서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수감됐다. 여러 논란이 있지만, 수감은 뇌물 적극 공여자에 대한 엄벌이라 할 수 있다.
2017년 3월 31일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된 박 전 대통령은 2021년 1월 21일 기준 1,393일째 수감 중이다. 역대 최장 기간 수감된 전직 대통령이란 역사를 새로 썼다. 참고로 내란죄와 뇌물수수죄 등으로 기소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각각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징역 17년형을 선고받았지만, 1997년 말 사면되면서 751일, 767일만 복역했을 뿐이다.
한편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9일 대법원에서 횡령과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징역 17년, 벌금 130억원, 추징금 57억 8,000만원을 선고받아 형이 확정됐다. 이 전 대통령은 2018년 3월 22일 첫 구속된 이래 1월 21일 기준 437일째 수감 중이다. 특별사면이나 가석방 등이 없을 경우 이 전 대통령은 95세가 되는 2036년에 출소한다.
두 명이나 전직 대통령이 감옥살이하는, 애들 말로 쪽팔리는 나라의 국민이라는 사실에 새삼 분통이 터지지만, 형 확정에 따라 사면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새해 벽두에 불쑥 끄집어낸 후 일각에서 사면 얘기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형국이다. 사면에 대한 고유권한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에게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1월 18일 가진 신년 기자회견에서 “지금은 사면을 말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라며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 절차가 이제 막 끝났고, 엄청난 국정농단, 그리고 권력형 비리가 사실로 확인됐고, 우리 국민들이 입은 고통이나 상처도 매우 크다”고 말했다.
이어서 “하물며 과거의 잘못을 부정하고 재판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차원에서 사면을 요구하는 이런 움직임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상식이 용납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저 역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많은 국민이 사면을 반대하는데다가 두 전직 대통령의 딱 부러진 반성과 사과가 없어 지금 당장은 사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10월 법정에서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 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한다”고 발언한 이후 재판을 보이콧해 왔다. 대법원 선고에도 나오지 않았다. 국정농단 등에 대해 사과하지도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은 수감 당시 측근들에게 “재판 자체가 정치 행위인데 사면도 정치적으로 할 것이다. 기대를 걸지 말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반응을 종합해보면 ‘나는 아무런 죄도 없는데, 정권이 바뀌어 정치보복을 당한 것’이라는 태도다. 일부 측근 정치인들이나 열혈 지지자들도 ‘정치보복’ 운운한다. 두 명의 전직 대통령 감옥살이가 있어선 안될 불행한 일이긴 하지만, 극히 일부를 뺀 대다수 국민들로선 더 기가 막히고 어이 없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그들 주장대로라면 대법원이며 검찰 등 사법기관은 물론이고 촛불을 든 수많은 국민들이 두 전직 대통령의 없는 죄를 조작하는 망나니춤이라도 췄다는 말인가? 전두환씨에 이어 박근혜·이명박씨로 호칭부터 예우가 박탈되는 전직 대통령들을 도대체 언제까지 봐야 하는지, 코로나19 상황 못지 않게 참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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