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준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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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준엄성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0.04.21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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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산은 엄숙(嚴肅)하다. 산은 숭엄(崇嚴)한 자세로 억만년을 살아왔다.

산은 죽은 것이 아니라 산심(山心) 내부에서 수심(水心)과 깊은 호흡을 하며 명맥(命脈)이 튼튼한 생자임을 알아야 한다.

산은 침묵(沈默)으로 석상(石像)처럼 말없이 살아온 도인(道人) 같은 마음가짐을 지녔다. 산이 말 없다고 함부로 다스리는 인간의 언행을 신(神)과 함께 응시하고 있음을 우리 인간들은 자성(自省)해야 한다.

산은 높고 낮은 가족을 거느리고 늙고 젊은 짐승과 수목을 거느려 천년을 또 천년을 살아가고 있다. 산으로 가는 마음, 산과 같이 숭엄하고 산을 존경하며 산을 두려워하는 마음가짐으로 산을 오르고 내려가야 한다.

산을 함부로 보는 자와 산을 얕보는 자는 꼭 산에서 해를 보고, 산을 다스린 자는 나라와 평화도 다스렸다. 과거 모든 동서양의 철인(哲人)들과 인자(仁者)와 지자(知者)가 산을 좋아했다 함은 그들은 산을 존경하며 산을 인간의 최대 숭엄자로 모시고 살았다는 의미도 내포돼 있다는 것이다.

자고로 무수한 시인(詩人)들이 산을 노래했다. 시인들이 산을 소재로 해 시 작품화할 때는 적어도 산을 얕보거나 속되게 발밑에 밟고 산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시인들은 자기 마음속에 산을 신격화(神格化)·신비화·존경 존엄화(尊嚴化)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많은 인간사 속에 산은 엄연한 생명체로서 존재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도시 주변의 산을 한 번 살펴보면 현대인들은 산을 존경하기는 커녕 산을 무시하고 얕보며 산을 함부로 오르내리고 있다.

요즘 주말이나 공휴일에 변두리 산 밑을 살펴보면 산을 오른다는 것, 등산한다는 것은 인간 수양(修養)이다. 이 수양은 적어도 일심으로 단련시키는 수양 중의 수양이요 일종의 도(道)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등산객들도 산을 오를 때에는 도를 닦는 마음, 신앙 같은 순백(醇白)한 마음가짐과 몸가짐으로 등산을 해야할 것이다. 그런데 통계에 의하면 오늘의 등산객들은 60% 이상이 등산의 의미도 모르며 산을 오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등산로에 있는 마을 사람들이 심어놓은 꽃을 모조리 꺾어 들고 산을 오르내린다. 이것 뿐인가, 산 아무데고 불을 놓고 음식을 하며, 먹고 남은 음식을 아무데나 버리고 산천초목(山川草木)을 멋대로 자르고 쳐버리는 것을 보았다. 물론 진짜 등산객들도 일부 있는 것으로 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등산객 전체가 욕을 먹기 마련이다. 한국의 등산객은 100만여 명이라고 한다.

이 엄연한 현실 앞에서 생각해 보면 진실한 등산객이 얼마쯤 될 것인가? 가까운 일본의 한 예를 보면 일본 경도(京都)의 뒷산은 공원인데 사람들이 가면 사슴이 앉아서 과자를 받아먹고 인사로 고개를 끄떡하며 산속으로 으스렁 걸어간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 창경원에 있는 사슴뿔도 베어가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도 자연을 사랑할 줄 아는 지식과 수양이 필요하며 동물을 애호 양육할 줄 아는 인간성을 길러야 하겠다. 우리 등산객들부터 산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준엄성(峻嚴性)의 생각과 생활로 바꿔가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주변의 늙고 젊은 산맥(山脈)들이 짙푸른 빛으로 화하는 산을 만들어 가야 한다.

수목이 우거지면 자연적으로 짐승과 날새들이 곱게 살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우리 주변의 산들은 친근하며 같이 웃고 같이 울고 같이 생활하는 공존자격(共存者格)이 되도록 산에 인격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 산을 가꾸며. 산을 아껴주고 산을 고운 마음으로 선장(善場)이 되게 해야 한다. 산을 떠나서 인간은 존재할 수도 생활을 영위할 수도 없다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산은 억년, 천년을 우리를 위해 눈·비·바람·서리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또 한번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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