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통합 못 하면 역사의 죄인, 국정 농단보다 더 큰 불행 자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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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통합 못 하면 역사의 죄인, 국정 농단보다 더 큰 불행 자초
  • 허성배
  • 승인 2019.11.14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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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11월 9일 집권 반환점을 돈 문 대통령은 이미 험난한 하산 길에 접어들었다. 취임 초 80%를 넘었던 지지율은 국정 운영 난맥상으로 반 토막이 났다. 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과 반일 감정 자극 등 깜짝 이벤트로 위기를 넘겼지만, 그런 전술은 더는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생겼다. 말로가 불행했던 역대 대통령들보다 문 대통령은 더 불행한 길을 걸을 수도 있다. 한국 경제는 성장률이 1%대로 추락할 위기에 처하는 등 갈수록 암울해지고, 남북·한미·한일·한중 관계 등 외교 안보 상황은 나빠질 대로 나빠졌고, 국론은 통합이 불가능할 정도로 두 쪽 났다. 국정 과제들이 후반기에 성과를 낼 것이라는 말은 희망 고문에 불과한 ‘정신 승리’라는 것이 드러났다.

문 대통령은 정책에서 실패했다. 최저임금 인상, 근무시간 단축, 탈원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4대강 보 철거, 세금 주도 일자리 창출, 현금성 복지 정책 등은 실패했거나 현실에 맞지 않음이 판명 났다. 불행의 주인공이 되지 않으려면 전반기 국정 기조를 바꾸고, 잘못된 정책들을 폐기하거나 대폭 수정해야 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독선적 국정 운영 방식도 바꿔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 퇴진’ 구호가 일반 국민에게도 익숙해진 것은 지난 10월 3일 광화문 광장 집회 때부터다. ‘태극기 부대’ 등 일부 단체가 집권 초부터 대통령 하야를 주장했지만, 개천절 집회에선 광화문 앞에서 서울 시청 앞 광장까지 가득 메운 대규모 군중이 “문재인 물러나라”고 외쳤다.
조국 사태에 대한 분노가 직접적 계기였다. 이는 집권 후반기인 2016년 10월 ‘최순실 사태’로 같은 장소에서 대규모 퇴진 요구가 나온 박근혜 전 대통령보다 시기적으로 이르다. 국정 기조와 정책의 전환은 국민과 약속한 대선 공약 위반이자, 자기부정이기에 뼈를 깎는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권력의 단맛을 즐긴 기득권 노조와 이념적 좌파 인사 등 문 대통령 핵심 지지층은 문 대통령을 배신자라며 총공격을 가할 것이다.
독일의 좌파 정치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는 2000년대 초 노동 유연성 강화, 세율 인하 등 과감한 개혁안을 담은 ‘어젠다 2010’을 추진해 유럽의 병자로 불린 독일을 제조업 강국으로 탈바꿈시켰다. 개혁에 대한 반발 때문에 선거에서 패배해 권력을 잃었다. 하지만 그는 독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성공한 국가 지도자로 존경받고 있다. 대한민국을 위해서라면 정권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결기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사과에 인색했다. 부마 민주항쟁 등 이전 정권에서 발생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정부를 대신해 사과했지만, 정작 본인이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았다.
잇단 인사 실패에 대해 “송구스럽다”고 하면서 야당의 정치 공세를 탓했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에 대해서는 언론의 성찰을 요구했다. 최저임금을 역대 최대인 16.5% 올려놓고서 심의 위원들이 이전 정부에서 임명됐으니 우리가 올린 것이 아니라고 하는 판이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성찰이 없으면 신뢰를 받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은 반대파에 가혹했다. 정권 초반 적폐 청산에 앞장서며 말을 잘 듣던 검찰이 조국 사태 때 자기 뜻을 따르지 않자, 반인권 적폐 집단으로 몰아붙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복수심이 작용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문 대통령의 태도는 냉혹했다. 경제를 살리겠다면서도 경제 5단체 중 전경련을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전경련이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됐기 때문이다. 디플레이션(D)과 일본형 장기 불황(J), 경기 침체(R) 등 ‘DJA’ 공포가 엄습하는데도 말이다. 문 대통령은 서해를 지키다 순국한 호국 영령을 기리는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도 참석하지 않고 있다. 관용이 없으면 국민 통합은 불가능하다.
정책을 전환하는 용기와 잘못을 인정하고 되돌아보는 성찰, 반대파를 끌어안는 관용 등 세 가지 자세로 집권 후반기에 임한다면 문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의 불행한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다. 세 가지 중 꼭 해야 할 한 가지를 꼽으면 관용이다. 정책이 실패하면 정권을 내놓으면 된다. 성찰하지 않는 경우라면, 미움을 받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관용이 없다면 국민 통합은 요원하다. 국민을 갈라놓고, 나라를 두 쪽 낸 지도자는 역사의 죄인으로 남는다. 국정농단보다 더 큰 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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